지난 토요일(6월13일) 무덥고 놀이터조차 테이프로 둘러져 갈 곳 없는 5학년 딸래미와 친구들을 데리고 석산텃밭 손모내기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밭작물들만 자라던 석산 텃밭에 어느샌가 작은 물구덩이가 생기고, 그 곳이 논이 되었습니다.
재작년에도 손모내기와 벼베기를 체험한 딸아이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친구들을 모았고, 아이들은 학원도 빠지고 중무장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온라인 수업으로 지치고 집안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에만 빠져 사는 아이들을 보며 심란했던 부모들에게 더 기쁜 소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두 말 않고 학원도 빼주고, 간식이랑 물도 싸서 보냈더군요.
어린시절을 경기도 이천에서 보낸 저에게는 손모내기는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모내기철이면 마을에서 어느 집부터 할 것인지 순서를 정하고, 순서가 되는 집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을 사람들 식사를 책임지고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집의 모를 내는 것입니다. 큰 아이들은 모내기에 손을 보태고 어린아이들은 온종일 몰려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겠지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습니다.
모내기에 앞서 돌고르기와 논 바닥을 고르게 하는 써레질 작업을 썰매를 타며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즐거운 추억이었고, 모내기철 체험관광상품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작은 논에 인천지역에서 주로 키우던 자광도를 비롯한 4종의 토종벼를 심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본래 1,500여종의 토종벼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 익은 벼의 색깔도 붉고, 검고, 다 제각각에 까락이라는 긴 수염이 달린것, 까락이 없는 것, 키도 제각각, 벼가 익는 시기도 다 다르다고 합니다. 각 지역의 기후에 맞게, 농부의 개성에 따라 각기 다른 벼를 키웠던 것이죠. 그런데 일제시대에 우리나라가 군량미 생산기지가 되면서 일제가 원하는 품종을 심어야 했고, 해방후에는 무조건 쌀이 많이 나오는 통일벼만 심도록 했다고 합니다.
어릴적에 이른바 '정부미'라고 불리던 통일벼는 맛이 없어서 시골에서는 정부수매용으로는 통일벼를 심고, 식구들이 먹을 건 주로 '아끼바레'라는 품종을 따로 조금씩 심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황금들녘이 아니라 토종벼들이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띈다니 더욱 기대됩니다.
양쪽에서 못줄잡이가 줄을 잡아주면 아이들이 표시된 곳에 모판에서 뗀 모를 찢어서 심습니다. 사람이 많아 자리싸움도 치열했습니다. 어른들은 적당히 빠져주고 아이들이 주로 심었습니다.
작은 논이지만 워낙 무더워 힘들텐데도 아이들이 꿋꿋합니다. 물론 바닥에 심기지 못하고 뜬 모는 선생님들이 나중에 수습하시는 걸로....
작은 논이지만 워낙 무더워 힘들텐데도 아이들이 꿋꿋합니다. 물론 바닥에 심기지 못하고 뜬 모는 선생님들이 나중에 수습하시는 걸로....
맛있는 새참시간...
시원한 수박과 말랑한 떡이 정말 맛있었어요.
더위를 식히고 서로의 소감을 이야기 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앞으로 밥을 잘먹겠다고 밝혀 박수를 받은 아이도 있었고, 진흙에 들어가는게 꺼려졌는데 해보니 재미있었다는 어른도 있었습니다.
시원한 수박과 말랑한 떡이 정말 맛있었어요.
더위를 식히고 서로의 소감을 이야기 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앞으로 밥을 잘먹겠다고 밝혀 박수를 받은 아이도 있었고, 진흙에 들어가는게 꺼려졌는데 해보니 재미있었다는 어른도 있었습니다.
새참이 끝나고 논 주변으로 둘러앉아 배틀콩을 심었습니다. 30cm 정도 간격으로 세알씩 심었습니다. 콩 세알은 한 개는 사람이 먹고, 한 개는 새가 먹고, 한 개는 거름이 되라는 의미라네요.
아직은 싹이 안 나와 안보이겠지만 혹시 논 주변 너무 가까이는 밟지 말아주세요. 아래 콩이 자라고 있어요.
오가며 볼 수 있는 텃논이 생겼네요.
논을 처음보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많은 요즘입니다.
코로나19라는 상황을 겪고보니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을 움직여 먹거리를 스스로 키우는 일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 남이 만들어준 식재료, 남이 만들어준 옷, 남이 하라고 하는 공부... 이게 자연스러운 우리 삶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아이들중에 농부가 꿈인 아이들은 본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해 본 적도, 본 적도 없고, 농부가 전문가로 인정받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고생만 하고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니 그렇겠지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제 농사는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기본적인 생활기술이 되어야 하지 않을 까요?
그런 의미에서 도시 안에 공원이나 학교 등에 '한 평 논만들기'를 해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2020.06.15 서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