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도시를 경작하는 도시농부들(월간환경 3월호)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 김충기
왜 도시농업을 하는가?
우리가 매일 먹는 밥. 밥 한 공기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식당에서는 천원이면 언제든지 밥 한 공기를 추가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밥의 가치를 상품으로만 보는 것인데 과연 그 것 밖에 안될까? 농업도 마찬가지이다. 농업생산의 부가가치만을 보지 말고, 다양한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도시에서 실현하자는 것이 도시농업이다.
최근 도시에서 농사를 짓자고 하는 목소리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시농업이라는 생소한 말들이 이제는 너무나 자주 접할 수 있고, 사람들의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 도시에서 살면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라는 용어가 매력적인 이유는 막연히 꿈꾸는 귀농, 귀촌보다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이런 분위기에서 도시농업을 실천하고자 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서울시의 경우 대대적으로 도시농업을 지원하고 있다.
왜 도시에서 농사를 짓자고 하는 것일까? 첫째, 도시가 절실하게 농사를 원하고 있다고 본다. 산업화 이후 과밀화된 도시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공동체가 사라지는 문제, 환경의 문제, 에너지의 문제, 일자리, 복지 등 여러가지 문제들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농사가 가진 다양한 가치들이 도시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농업이 도시로 들어올 필요성이 절실하다. 여러가지 먹거리의 문제와 우리농업 기반의 위기는 단순히 농민들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 온 인류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항인데도 도시민들의 관심은 적다. 농업이 적극적으로 도시로 들어와 농업을 살려야 한다.
도시농부들의 배움터 도시농부학교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처음 도시농부학교를 열었던 것이 2009년이었다. 30명을 목표로 홍보를 시작했는데 일주일만에 70명이 넘어 양해를 구하고 그 이상 수강생들은 돌려보내야 할 정도로 호응이 커서 놀라기도 했다. 많게는 70대 노인부터 적게는 고등학생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귀농을 꿈꾸는 중년부터 농사를 하나도 모르는데 배우고 싶다는 젊은이들, 텃밭농사를 오래 지어왔지만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노인들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농사라는 하나의 관심사로 모여 분위기도 좋았다.
도시농부학교의 가장 백미는 실습수업 이후에 벌어지는 막걸리파티 시간이다. 학교처럼 딱딱한 수업만 듣다가 텃밭에 나가면 모두들 마음이 더 여유로워진다. 그리고 역시 텃밭에서 흙을 만지고 직접 실습하는 재미가 무엇보다 크다. 실습 이후 막걸리 파티에서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게 된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고 농사 관련 다양한 경험들을 들으면서 서로 친해지는데 막걸리만큼 좋은 것이 없다.
2009년을 시작으로 많은 도시농부학교 있었고, 지금 도시농업활동을 하는 사람들, 텃밭강사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도시농부학교를 거친 사람들이다. 도시텃밭의 가치를 호미 하나로 실천하고 있는 주역들이다.
비닐멀칭 안하고 농사가 되나요?
도시농부들의 텃밭에는 전업농에서 자주 쓰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비닐이다. 환경을 살리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보겠다는 도시농부들에게 화학비료와 농약은 사용하지 말자고 한다. 거기에 비닐까지 쓰지 말기를 권한다. 농약(살충제, 살균제, 제초제)이 해로운 것은 다들 알기 때문에 이 것을 설득하는 것은 쉬울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마음들이 달라진다. 벌레가 왔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모기약을 쓰면 안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모기약도 살충제라는 걸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애지중지 키운 작물을 벌레에 내주느니 농약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인지 몰라도 계속 그런 일들이 생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옆에 밭에 요소거름을 주고 비닐멀칭을 한 고추가 내 밭의 고추보다 훨씬 잘 자라는 것을 보면 애가 타기 시작한다. ‘나도 자주 와서 돌봐주고 물도 잘 주고 신경도 많이 쓰는데 왜 이렇게 안자라지?’하는 생각에 화학비료를 쓰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른다. 거기다 풀이 본격적으로 올라기 시작하면 하루이틀이 다르게 잡초들의 기세가 높아지는데 이때 잠깐 신경을 못으면 어느새 풀밭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비닐멀칭을 하지 않고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데도 도시텃밭은 화학비료, 화학농약, 비닐없이 농사를 짓자는 원칙은 물러설 수 없는 기본이다. 처음 텃밭을 분양받은 회원들이 이를 모르고 비닐을 씌웠다가 원칙이 비닐을 못쓰게 되어 있으니 거두라는 말을 듣고 싸우는 경우가 많이 있다. ‘비닐 안 씌우고 어떻게 농사를 짓냐?’,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비닐을 씌워야 농사가 된다’며 목소리를 높여 항의를 한다. 나중에는 싸웠던 그 분이 누구보다 적극적인 텃밭참여자가 되긴 했지만 이런 경우는 언제든지 생긴다.
유기농이 쉬운 것이 아니다. 흔히들 농약, 화학비료만 안 쓰면 저절로 유기농이 될거라 생각하지만 그걸 써도 어려운게 농사인데 유기농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유기농업의 본질은 뭘 안 쓰고 짓자는 것이 아니라, 흙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농사를 짓자는 것이다. 그런데 화학비료와 농약은 이것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비닐멀칭도 마찬가지이다. 흙을 살리자면서 숨을 못 쉬게 비닐로 덮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좋은 흙이 아닌 땅에서 농사를 시작하면서 당장 유기농으로 농사를 잘 짓겠다는 욕심보다는 길게보고 흙 농사를 짓는 것이 좋다.
꼬마농부들과 배추벌레
도시텃밭이 가장 의미있게 사용되는 곳 중에 하나가 어린이집, 유치원이다. 아이들이 채소를 직접 심고, 기르고, 먹어보면서 얻는 교육적인 효과는 도시텃밭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능중에 하나이다. 일단, 싫어하는 채소를 먹게된다. 직접 물주고 씨뿌려서 키운 채소를 먹으면서 자연의 맛을 접한다. 씨앗에서 싹이나고 열매 열리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몸으로 알게된다. 흙을 만지고 작물을 가꾸면서 소근육이 발달한다. 작물과 교감으로 생태감수성이 생긴다.
그리고, 생태텃밭농사를 지으면서 덤으로 생기는 것들이 있으니 바로 풀과 벌레이다. 채소밭에 생기는 다양한 풀들은 아이들의 놀이감이 될 수 있고, 찾아오는 벌레들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관찰하는 즐거움을 준다. 당연히 텃밭수업에서 벌레들은 빠질 수 없는 소재이다. 그런데 어느 강사 배추벌레수업을 준비하면서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 도시농부들은 9월에 배추가 자라면서 생기는 배추벌레들을 잡기에 바쁘다. 당연히 어린이집의 텃밭도 벌레들이 생기고 그 시기 수업은 배추벌레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강사가 자신의 수업안을 소개했는데 배추벌레가 자라는 과정과 나비로 되기까지의 이야기, 거기에 활동지까지 훌륭하게 수업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수업을 마치고 벌레를 잡아서 죽이는 걸로 계획을 세웠다. 애벌레가 예쁜 나비가 되고, 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니 나중에는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실제, 배추벌레수업을 하고나서 벌레들을 잡는 것까지 하고, 관찰하고 죽이는 것보다는 배추 한포기를 희생해서 그곳에서 벌레를 모아서 키우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벌레를 죽이지않고 번데기에 나비까지 관찰할 수 있다. 아무리 배추키우기가 주된 목적이지만, 아이들과 텃밭수업의 경우 벌레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여유가 더 요구된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2007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함께 만드는 공동체텃밭, 도시농부학교에서 강사양성과정, 생태텃밭교실까지 농사와 관련된 교육활동, 도심속 텃밭을 만드는 보급활동, 도시농업정책의 연구와 지원 등, 농업이 가진 가치를 도시에서 실현하고, 농업, 농민과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것을 실현하는 도시농부들이 모여있는 단체이다.
도시농업은 결국 도시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도시농부들의 일상들이라 생각된다. 호미만 있으면 얼마든지 도시농부가 될 수 있다. 올해 호미가 많이 팔리길 기대한다. 호미로 도시를 경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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