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의 의미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김충기
도시와 농업
도시농업이란 용어는 왠지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어 발전해온 과정에서 이제 도시는 소비를 하는 곳이고 농촌은 생산을 하는 곳으로 나뉘어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명의 시작이 농업의 발전에서 왔듯이 도시의 발전은 식량생산을 뒷받침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시와 농업은 아주 밀접한 관계였다.
최근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도시농업의 바람은 다양한 배경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먹거리의 안정성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환경의 위기를 느끼면서 현재의 문명, 도시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들에 반응일 것이다. 농업(여기에서 농업은 산업적인 기능으로 業이 중심이 아니라, 다원적 가치를 지닌 農에 중심을 둔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개체이면서 동시에 그것 자체가 대안으로 여겨진다.
도시는 농업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사라진 사회, 순환의 고리가 끊긴 환경, 소비와 배출만을 만복하는 구조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농업은 도시가 필요하다. 식량자급률 22.5%의 수준에서 우리농업은 90%이상이 살고 있는 도시민에게 중요성을 알려야한다.
세계식량의 위기
2008년 초 세계 곡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전세계 여기저기에서 식량부족으로 폭동이 일어났고,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해가 거듭될수록 기후의변화는 급격해지고 2012년 홍수와 가뭄이 농업생산량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2013년 다시 더 큰 식량문제가 올 것이라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 2000년 이전의 식량문제는 전체 수요량에 대한 공급량의 부족에서 온 문제가 아니라 빈곤국가, 빈곤층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않은데에서 온 문제였다면, 2000년 이후부터 발생한 식량문제는 그것 뿐만 아니라 절대공급량의 감소로부터 기인하게 된다.
2000년 이후로 세계 곡물재고량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USDA의 2008년 세계곡물 재고율은 14.9%로 적정재고율(16~17%)를 밑돌게 된다. 즉 소비량의 증가를 생산량이 못 따라와 주는 것이다.
이로써 이제 세계 각국은 식량확보 전쟁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량위기를 느낀 러시아, 중국, 인도, 우크라이나, 브라질 등 식량 수출국들이 수출관세, 수출할당량, 심지어 수출금지 등 각종 수출규제로 문을 닫기 시작했다. 폭등하는 원유가와 마찬가지로 수출국의 통제는 가뜩이나 폭등하는 식량가격의 고삐를 풀어준 셈이다. 그야말로 식량의 무기화가 현실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업의 위기
그러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아직 쌀은 자급하고 있지만, 이 또한 개방을 해놓은 상태이고 2014년까지 8%의 의무수입을 해야 하는 상태이다. 그나마 쌀을 포함한 식량자급율이 22.5%이다. 쌀을 제외한 옥수수, 콩, 밀 등을 포함한 나머지 자급률이 5%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약 50% 수준이었던 것이 시장개방이 확대되면서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지난 몇년간 쌀 자급도 어려워져 90%를 밑돌고 있다.
또하나 심각한 위기는 바로 한국농업을 지탱하던 농촌의 위기에 있다. 2007년 농촌경제통계를 보면 가구당 소득은 10년 전에 비해 39%만 증가한데 비해 전년에 대비해 오히려 1%가 감소하였다. 평균 농가부채는 29,946천원으로 10년 전에 비해 140%가 증가했고 전년대비 16%가 증가했다. 특히 가장 많은 농가인 벼농사농가의 소득은 평균농가소득의 75%수준으로 나타났다.
1990년 700만 명 정도이던 농가인구는 2006년 절반 넘게 줄어 300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60세 이상 인구가 60%정도를 차지할 정도이고, 40세 이하 인구가 1970년 35%에서 2003년 3.5%로 줄었고 이런 추세라면 2013년에는 1%이하가 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농업붕괴 시나리오
우리나라 연간 농업부문 부가가치는 2006년 18조원이다. 이는 삼성 등의 대기업 이익수준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농업은 경쟁력있는 기업농 형태로 일부 살아남게 하고, IT나 자동차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에 훨씬 득이 되지 않을까?
혹자는 지금 농업에 들어가는 정부지원이 막대하니, 이것은 오히려 육성해야 될 중점산업에 투자하는 비용의 손실이라 오히려 농업이 받고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이 시장원리에 벗어한 특혜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럼 정부가 항상 교과서로 삼고있는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어떨까?
선진국들은 농가소득을 국가재정에서 직접 보상하는 직접지불제를 서두르고 있다. 전체농가소득에서 직접지불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28%, 유럽연합35%, 캐나다38%에 이르며 갈 수로 그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또한 통상협상에서 자국의 농업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협상대상에서 예외로 삼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선진국 일수록 농업을 중시하고 국가차원에서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선진국은 평균 2% 정도로 우리나라 4%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선진국들이 농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까지 농업을 보호 육성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농업이 붕괴했을 때 지불해야할 대가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식량안보의 위기
한국농업이 해체 되었을 때를 가정해보자.
떠올릴 수 있는 첫 번째 장면은 심각한 식량안보의 위기일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미 세계적인 식량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공산품이나 에너지는 소비를 억제할 수 있지만 식량의 경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중국은 식량증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2004년 곡물최저수매가제 실시와 2006년 농업세 폐지를 단행했다. 일본 또한 식량안보를 현실적 위기로 판단하고 자급율을 단계적으로 높여 45%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추진하면서 유사시 휴경지 100만ha를 경작하여 위기를 극복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2000년 이후 오르기 시작한 세계 곡물가는 2000~2007년 사이 쌀이 77%(미국산), 밀 59%, 옥수수 71%, 콩 53%가 올랐고, 최근 일년(2007년 3월~2008년 3월) 사이에는 급격한 폭등으로 쌀 58%, 옥수수 36%, 콩 82%, 밀 170%가 올랐다.
2000년 이후 곡물가 상승은 만성적인 공급부족 현상에 오는 상승효과였다고 하면, 최근 일년 사이에 기록적인 곡물가 상승은 이와는 다른 양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식량의 무기화, 투기화가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식량의 위기가 닥치자 각 나라들은 자국의 식량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국제 곡물가는 치솟을 수밖에 없으며, 식량수입국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일례로 필리핀의 경우 쌀 수입이 막혀버리자 국민들에게 쌀 배급을 통제하고 심지어 교도소를 논으로 바꾸어 쌀을 생산하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이다.
만성적인 공급부족으로 식량위기가 현실로 나타나자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투기자본들이다. 더 이상 투기대상을 찾지 못한 자본들이 이제 석유, 곡물, 금, 철강 등을 먹잇감으로 사냥에 나선 것이다. 국제거래 물량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곡물메이저는 이 같은 위기 사태를 유례없는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식량은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식량안보에 안전지대인가? 우리나라 식량 자급율은 22.5%로 OECD 국가 중 일본과 함께 최하위그룹에 속한다. 최근 국제 곡물가 폭등에도 소요사태나 사재기 같은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밀, 옥수수, 콩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의 가격이 올라 물가가 상승하였지만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치닫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쌀에 있다. 주식인 쌀의 국내 자급기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가격폭등에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14년까지 8% 의무수입과 그 이후 사실상 완전개방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의 가치
농업이 붕괴되었을 때 야기되는 것은 이것뿐만 아니다. 농업은 식량생산 이외에도 생물 다양성 유지, 홍수조절, 온도 및 습도 조절, 대기정화, 토양보존, 공동체 유지, 전통문화 계승, 정서 함양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FAO는 이것을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라고 보고 있다. 농업이 붕괴되어 논밭이 황폐화된다면 홍수조절 기능의 약화와 함께 용수난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농업의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이가치를 농업생산물 가치의 최대 10배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농업이 붕괴되면 미래산업 발전에서의 선도적 기능이 상실할 것이다. 농업이 사향산업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멀리보지 못하는 시각에서 비롯된 잘못이 있다. 오늘날 미래산업으로 나노기술, 생명공학을 빼놓을 수 없다. 농업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 생태계와 교감하면서 생명을 기르는 고도의 기술을 축적해온 산업이다.
국민농업
점차 붕괴되는 농촌사회와 함께 우리농업의 사활이 기로에 서있다. 앞서 말했듯이 농업의 중요성은 어느 산업보다 중요하고, 국가의 중대한 해결 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농업의 회생 전략은 무엇일까?
농업이 붕괴되었을 때 미칠 파급은 비단 농민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즉 모든 국민이 그 부담을 함께 안게 될 것이기에 농업의 이해당사자는 전국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농업의 육성은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국민 전체가 먹을거리 문제를 함께 책임지는 국민농업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식량자급을 포함해서 먹을 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농업의 일차적 기능이라면 이와 더불어 양뿐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최근 안전한 먹을거리는 전국민의 화두가 되었다. 미국산쇠고기로 촉발된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가축뿐 아니라, GMO식품의 위험성과 더불어 심각한 먹을거리 불신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안전한 먹을거리의 공급은 농민의 몫일 것이다.
둘째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국민모두의 이해와 직결된다.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시키고 정화하며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은 국민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셋째 농민의 생존을 국민 모두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농민의 생존은 농업의 목적이면서도 전제 조건이기도 한다. 농업이 국가기간산업으로 간주하면서 농민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선진국의 징표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농민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민농업이라는 추상적인 상을 구체적으로 해결해 만들어나가는 것은 앞으로 함께 고려해야할 중요한 문제이다. 그중 한 가지 대안으로 도시농업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왜 도시농업인가?
도시농업이란 말이 아직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외국의 경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례들이 많으며, 특히 쿠바의 아바나는 전세계 도시농업의 수도라고 말 할 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
사실 농업은 농촌과 도시가 따로 나눠져 농사는 농촌에서만 짓는 것이라는 관념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도시는 어떤 지역이 발달하여 인구가 많아지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것으로 농촌과 도시를 따로 구분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농업이 먼저 발달한 것은 오히려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그러나 산업화가 급격히 이루어지고 개발위주로 도시가 팽창하면서 농촌은 점점 도시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모든 권력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해방 전 후 대부분이 농업인구였던 우리나라는 2006년 기준으로 전체의 3.5%정도로 미미하다. 농업이 저절로 전국민의 이해당사자일 수밖에 없었던 지난시대 구조에서 이제는 그렇지 않은 구조적 취약성이 어쩔 수 없게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서 도시농업의 중요성을 찾아 볼 수 있다.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알기란 쉽지 않지만, 직접 작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먹을거리의 소중함과 생명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특히 패스트푸드로 입맛이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먹을거리교육으로 직접 지은 작물은 몸으로 체득되는 살아있는 교육인 것이다.
한마디로 도시인이 농사를 지어보면 농업이 전국민이 지켜야 될 이해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도시농업은 도시인들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자연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단순히 농촌을 위한 도시농업인가? 그렇지 않다. 도시농업은 단순한 생산활동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도시농업의 다양한 가치
지금 전 세계는 기후변화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는 전 인류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밀화된 도시는 아스팔트와 건물벽에 포위되어 열섬화현상 등 심각한 환경문제를 안고 있다. 개발에 의해 녹지는 줄어들었고, 그나마 있던 농지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늦었지만 선진국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에 나서고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 있다.
도시농업은 도시의 녹지를 높이는 주목할 만한 대안이다. 공원과 옥상녹지 어느 곳이든 경작이 가능하다. 오늘 녹지의 개념이 경관과 휴식의 개념이라면 도시농업을 통한 녹지는 생산과 여가, 그리고 교류의 장이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생명의 교육이며 먹을거리교육에 있어 몸으로 체득하는 활동이 될 것이다.
이렇게 경작경험을 한 도시농부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로써의 경험을 통해 농촌과 농업에 대한 이해정도가 달라질 것이고, 여기에서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먹을거리 새로운 대안으로 로컬푸드의 움직임이 활발해 질 것이다.
이러한 도시농업은 식량자급율도 높일 수 있다. 그것은 농촌의 밥그릇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작물은 채소 등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주곡의 생산은 어렵다. 따라서 전체적인 식량자급을 높이면서, 역으로 인식이 향상된 도시민의 지역먹을거리 수요가 높아질 것이고, 이로인한 공급은 당연히 따라올 것으로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또한 도시의 노인과 여성들에게는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게 될 초고령 사회에 노인문제는 이제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은퇴한 노인들이 활동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며, 생산적이고, 공동체 형성에 도움이 되는 농사일 것이다.
농업의 활로 도시농업
예컨대 도시농업은 이미 일본의 시민농원, 영국의 얼라트먼트, 독일의 클라인가르텐, 쿠바의 도시농업 등에서 증명되고 있듯이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는 세계적인 추세이며, 이미 많은 부분 우리의 도시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많은 도시민들의 수요도 있으며,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시농업을 미래비전사업으로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정부는 도시농업활성화에 대한 논의를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이며 이 또한 농업의 관점보다는 저탄소녹색성장의 일환, 도시민의 여기문화정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도시민들이 경작을 하기 시작하면, 도시는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농촌이 다시 살아날 것이고, 우리농업은 이제 전 국민이 이해당사자로 함께 살려야하는 산업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한국농업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유기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도시농업
도시는 생태적인 순환 고리가 끊겨 있는 공간이다. 콘크리트, 아스팔트와 하수문화로 설계되어 있는 도시는 물의 순환구조를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흙을 밟기가 어려워진 만큼 흙의 생태적 기능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도시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사람들이 배출하는 것들(음식물 쓰레기, 똥, 오줌)은 오염물질이기 이전에 발효를 통하여 퇴비로 만들면 훌륭한 자원인데도 버려지는 오염물질이 되어버렸다. 이 물질을 이동시키고 처리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고, 버려지는 오염물질은 악취와 병균과 함께 우리의 삶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유기물의 순환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농업은 4000년간 농사를 지어도 황폐화되지 않고 비옥한 땅을 유지하며,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려왔는데 그 기본에는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소비하고 남거나 배설한 것은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는 유기 순환 시스템을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도시농업은 이러한 유기순환 시스템을 복원시켜 나가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
농사에 필요한 용수와 퇴비를 빗물과 음식물쓰레기 등을 활용함으로써 도시의 자원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여 도시의 생태적 기능회복을 꾀하여야 한다. 즉 도시농업은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농법이 아닌 친환경 농법을 적극 활용하여 도시농업에 의한 도시의 생태적 기능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한다.
지렁이를 활용한 음식물 퇴비화 시스템의 활용은 각 가정에서 음식물의 처리에 따른 어려움과 비용을 절감해 줄 뿐 아니라 유기 순환의 원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농사를 짓는 공간뿐만 아니라 공원 안에 만들어 지는 퇴비화 시스템은 가로수의 낙엽, 인근시장에서 버려지는 유기물을 발효시켜 퇴비로 활용함으로써 자원의 순환에 기여할 수 있다. 도시농업 공간인 농장, 도시농업 공원은 이러한 유기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농업은 소비자와 긴밀하게 연관된 활동이다.
도시농업은 전업농이나 관행농업이 아닌 도시공간에서 이뤄지는 농업활동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일하거나 긴밀할 수밖에 없다. 도시농업은 농산물의 소비자인 도시인들이 농산물의 생산에 직접 뛰어 들게 하여 농업생산자와 더욱 긴밀한 교감을 갖게 할 뿐 아니라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나 위기감이 높은 현실적 조건에서, 농산물 생산에서의 친환경적인 방법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도시농업을 통한 친환경 농업에 대한 체험은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촉진을 가져올 것이며 한국농업의 친환경 농업으로의 점진적 이행에도 기여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도시농업은 도시의 유기순환 시스템의 회복과 안전한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를 바탕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농법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도시농업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 될 수 있다.
먼저, 도심 내 공유지나 유휴지를 농지로 보존하여 경작하는 것이다.
일본의 시민농원이나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이나 영국의 애롯트먼트 가든(Allotment garden)처럼 도시구획 안에 시민농원을 설치하여 시민들의 농업체험에 활용 할 수 있다. 우리의 주말농장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지방정부의 적극적 의지로 제도적으로 활성화 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캐나다 밴쿠버는 올림픽이 열리는 2010년까지 시내에 2010개의 텃밭을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도심 내 텃밭은 도시의 환경에 긍정적 역할을 기여할 뿐 만 아니라 직접 재배하여 소비하는 특성상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자재함으로써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땅이 없으면 흙을 담아서 농사를 지어라
햇볕이 드는 작은 공간만 있으면 농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도시농업이다. 옥상은 일조량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좋은 곳이다. 아파트 옥상은 아파트 주말농장으로 만들 수 있고 학교옥상은 학교급식과 연계하면 생태교육과 더불어 안전한 급식재료 재배지가 된다. 현재 지방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옥상녹화 사업에 도시농업을 접목시킨다면 관공서, 학교 등의 옥상에도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자텃밭은 도시농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흙을 화분이나, 스티로폼 박스, 나무상자 등에 담아서 작물을 심으면 햇볕이 드는 베란다나 골목길 등의 공간도 텃밭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자텃밭 보급 활동은 장소에 커다란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아동과 청소년에게 환경교육의 일환으로, 가족과 노인들의 여가활동으로 도시농업 활성화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농업에서 행해지는 텃밭 농사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노동집약적이고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뛰어나 도시의 수많은 공간을 식량 생산의 기지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렇듯 도시농업은 농업의 위기와 더불어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도시에서부터 형성해 나가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도시텃밭의 활용
도시텃밭을 가장 먼저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공간은 학교이다. 학교는 공간이 풍부하다. 화단 일부만 이용하더라도 텃밭공간을 만들 수 있으며, 학교옥상을 활용하면 에너지 절약과 녹화형성 등의 다양한 가치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식생활 교육에 필요한 공간으로 텃밭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지역사회에 효과를 미칠 수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등 텃밭을 통해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치가 크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텃밭은 자연과 접하는 생태교육의 공간이며, 먹을거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워주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생명과 교감하는 활동을 통해 오감에 대한 자극도 받게 된다. 이러한 텃밭교육의 중요성은 최근 생태교육의 대안으로 텃밭을 활용한 교육이 각광을 받고 있다.
도시화로 인해 개인화된 사회는 이웃들 간의 교류가 없고, 공동체가 무너져있다. 도시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에 하나로 텃밭을 활용할 수 있다. 도시의 텃밭은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공간에 만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텃밭은 세대간(할아버지와 손자간)의 소통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이웃간의 소통도 만들어낸다. 함께 텃밭을 가꾸다보면 서로 교류가 이어지고, 나눔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도시농업은 도시를 바꾸는 운동적인 측면이 강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만들어나게 한다.
우리나라 도시농업
도시농업이란 용어가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전국귀농운동본부의 도시농업위원회에서 진행한 도시농부학교와 도시농업운동일 것이다. 이후,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설립과 활동으로 민간부분에서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되고, 상자텃밭의 보급과 도시농부학교의 확대로 도시농업운동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2009년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상자텃밭보급과 이후 다양한 지역에서의 도시텃밭, 상자텃밭보급 등의 움직임과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으로 제도권에서의 활동이 점차 넓어졌다. 이미 서울, 부산, 인천 등의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도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후에 도시농업팀이 만들어져 생활원예, 텃밭 등 다양한 사업들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많은 공공기관에서 도시농업활동들이 늘어가는 시점이 2009년을 시작으로 2010년 넓게 확장된다. 그에 맞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도시농업조례가 만들어지고, 도시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2011년 제정되었다.
민간단체들은 도시농업을 주로 환경과 생태, 공동체, 도시재생, 자급과 자원순환,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중심으로 다양한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 처음으로 도시농업민간단체들의 협의체가 생겨나기 시작해 부산, 경기도 도시농업시민협의회가 생기고, 전국적인 협의회로 도시농업시민협의회가 3월 창립되었다.
행정에서 도시농업활동은 아직 구체적인 방향과 목표가 뚜렷하지 못하다. 로컬푸드로 푸드마일리지를 줄이는 등 저탄소녹색성장 운동으로 접근하는 방식과 함께, 한편에서는 LED식물공장과 같은 산업적인 접근도 하고 있다.
법의 제정과 조례로 인한 도시농업의 제도적인 정비를 하고 있는 단계에서 부딛치는 한계도 있다. 실제 서울이나 인천과 같은 과밀도시에서 경작지의 확보를 위한 공원의 활용이다. 도시 농지의 도시농업으로의 활용에서 풀어야할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호미로 도시를 경작하는 도시농부들
도시농업의 다양한 가치와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결국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이 필요한가? 도시농부들이 필요하다. 도시를 경작하는 도시농부들이 도시농업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도시를 갈아엎자. 도시농부가 회색 시멘트를 갈아엎고 생명의 녹색공간으로 만들어낸다. 순환하지 못하는 도시인의 삶과 도시의 시스템을 갚아엎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어낸다. 먹거리의 대부분을 타인에게 맡기는 불안정한 체계를 갈아엎고 스스로 먹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도시농부가 만들어낸다.
도시농업운동은 도시와 농촌을 위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농업일 것이다. 농업의 가치를 새로 발견하고 그 다양한 가치들을 도시에서 실현해 가면서 도시를 바꾸고, 도시를 바꿔서 농업을 살리는 운동이다. 호미로 도시를 경작하는 도시농부들이 많아질수록 그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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