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발견> 정석 지음, 메디치
2017.3.23. 구름너머
‘도깨비’, 지난 겨울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다. 남자 주인공 공유의 멋짐이 폭발하며 수많은 여심을 사로잡았다.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 저승사자와 삼신할머니를 등장시킨 스토리도 흥미로웠다. 드라마의 장면들 중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는 여주인공인 김고은이 수능 시험에 늦지 않도록 가게 문을 들어갔다 나오며 순간 이동하고, 도둑이 탄 자전거를 저지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 속에서 내게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가끔 나들이 삼아 가는 곳, 바로 송도 신도시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여러 곳에서 송도가 배경으로 나왔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건물과 넓고 쭉 뻗은 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도깨비 속 공유의 옷차림을 닮았다. 이런 도시 풍경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사회사상은 물론 예술과 신학에까지 영향을 끼친 모더니즘”이 도시계획에 반영된 결과다. “인도의 샹디가르, 호주의 캔버라,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와 선진국의 대도시들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다. ‘도깨비’ 뿐만 아니라 ‘응답하라 1994’를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는 도시를 송도 신도시와 유사한 풍경으로 묘사한다. 현대적인 도시의 모범인 것처럼. 하지만 과연 저런 잘생긴(?) 도시에서 우리의 삶은 행복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무관심했던 도시의 속살을 보여주며 도시의 ‘주인’이 되라고 부추긴다.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 실험을 소개한다. 모든 일상이 이루어지는 도시를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야 우리의 삶이 행복해진다고 강조한다.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시민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고 외친다. 왜냐하면 도시는 시민의 뜻이 아니라 권력자와 자본의 힘에 의해 디자인 되고 운영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시를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팔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 재개발 사업이 그런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다. “재개발은 결국 돈이 좌우”하는 까닭이다. 낡았지만 포근했던 보금자리가 통째로 허물어진 사람들은 새로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엔 입주할 엄두도 못내고 더 열악한 곳으로 내몰리는 풍경. 여러 해를 반복하는 일이다. 아버지와 페인트를 함께 칠했던 필자의 옛 집도 철거 직전이다.
원주민을 내쫓는 재개발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대안적인 도시계획의 문을 연 미국의 제인 제이콥스. ‘사회적 자본’, ‘용도복합’, ‘거리의 눈’은 제이콥스의 책에서 처음 제시된, 이제는 상식이 된 도시계획의 개념이다. 저자는 제인의 눈으로 우리나라 도시를 바라본다. 골목길 구석구석을 차지한 자동차 주차구역은 공유공간의 사유화이다. 어릴 적 아이들과 술래잡기, 말뚝박기 하던 골목길은 이제 없다. 재건축사업은 커다란 섬과 같은 아파트 단지들만 양산한다. 동네 주민이 아니라 높은 담벼락 안의 성채 입주민들. 제인은 수많은 사례 연구를 통해 높지 않지만 길을 따라 잇달아 늘어선 건물들이 우리의 안전을 지키며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음을 밝혀냈다. 사람의 왕래가 많을수록 안전하고 접촉이 늘어나는 까닭이다. 새로 높게 지을 필요 없이 오래된 건물을 활용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신도시는 주거, 상업, 업무공간과 녹지가 명확히 나뉘어 있다. 기능별 단지는 넓은 길로 구획된다. “단지 안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있고 대부분의 활동은 건물 안에서 이루어진다.” 저자가 자주 방문하는 완주혁신도시가 대표적 사례인데, 운전하기는 좋으나 걸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곳이다. 사람들 사이를 단절하는 공간 구성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도시들은 제인이 제시한 방향을 따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우리 도시들에겐 아직 모더니즘이 대세다. 그래도 저자는 우리에겐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시, 성북구, 수원시, 전주시 등의 사례를 꺼내 보인다. 마을 만들기에 동참해 분전하는 이웃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결국 살기 좋은 도시는 걷기 좋은 곳, 이웃과 연결된 곳이다. 이 책은 우리의 마을,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앞으로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 볼 것을 권한다. 도시에서 ‘주인’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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