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성현영
도시와 자연, 자연과 도시.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시작은 화면의 교차로 시작된다. 화려하게 치장되어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백화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 그리고 바람소리와 풀 스치는 소리, 새소리와 벌레소리가 배경을 채워주는 땅과 하늘. 그리고 이 의도적인 장면 배치는 러닝타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하게 전해준다.
▲자연농을 실천하는 농부들
재생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도 나는 ‘자연농에 관한 내용이라고 했으니 자연농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겠구나.’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도시농부로 살겠다고 다짐한 후부터 자연농은 나에게 도시농부로서 할 수 있는 궁극의 농법! 필살기! 라는 묘한 우러러봄, 존경 같은 것이 있었던 거다. 자연농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지금 내 텃밭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을까, 자연농이라는 건 어떤 범위까지의 개입이 인정되는 개념일까 등등 머릿속에 떠다니던 질문들도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는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자연농은 하나의 농법이라기 보다는 살아가는 방식에 가까웠다. 삶 전체를 아우르는 가치관.
내가 성인이 된 후 갖게 된 가치관은 ‘역지사지’ 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하기 전, 내가 하기 싫은 건 남들도 하기 싫을 것이고, 내가 기분 나빠하는 언행은 남들도 언짢아 할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영화를 보며 자연농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자연농을 실천하는 농부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사람 역시 다른 생명체들과 다름 없이 자연, 지구, 우주의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고 그에 맞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내가 속한 곳의 기후와 토양을 알고 이에 맞춰 이것들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하지만 관행농은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인간에게 편한 방식대로 농사를 행해왔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계속해서 쓰면서. 도시에서의 편안한 삶도 사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의 이러한 생활 방식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결과는 인간의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돌아왔다. 지구의 입장에서, 자연이 싫어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해온 결과인 것이다.
▲다큐를 제작한 강희수, 패트릭 라이든 부부
‘아, 이제 자연농을 어떻게든 조금씩 실천해야겠다. 어렵지 않겠어.’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면 평화로운 들녘의 풍경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그리고 내 마음을 읽은 듯한 농부의 말이 들려왔다. 세상이 흘러가는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경제의 흐름도, 사회의 흐름도. 하지만 이를 문제의식을 갖고 지켜본다고 해서, 비판의식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일단 실천하는 것이 방법이다. 작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내가 자연농의 삶을 산다면 우선 내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 있고,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무언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커다란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나는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며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내 작은 텃밭으로 향했다.
▲자연농 인터넷 홈페이지(finalstraw.org)
다큐 ‘자연농’ 을 보고 나면, 나와 같은 도시농부라면 누구든지 어서 밭에 가고싶어서 몸이 들썩들썩하는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농에 관해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 역시 커질 것이다. 이를 눈치챈 것인지, 엔딩크레딧의 마지막에는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가 자막으로 보여진다. finalstraw.org 로 접속하면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연농에 관한 자료들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새로운 소식들도 접할 수 있다. 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를 봤다. 이미 자연농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들에게는 공감과 되새김의 의미로, 자연농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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