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이영준x임태훈x홍성욱
스마트폰 알람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손끝으로 환한 LED등을 켜고 수돗물을 틀고 전자레인지 속 음식을 데운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에서 5초만에 지상으로 내려온다. 강 밑을 지나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손가락만 까닥하면 만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컴퓨터라는 기계에 앞에서 일을 한다. 여가시간엔 우주 또는 넓은 바다 속, 상상의 세계를 실감나고도 스펙타클하게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영화를 본다. 다른 이는 하늘을 나는 드론을 띄우며 즐거워한다. 빠진 치아를 대신해서 인공 치아를 심고, 퇴행성 관절염으로 녹아내린 연골은 인공 관절로 대체한다. 우리는 테크놀로지 속에서 산다. 우리에게 테크놀로지는 피부다. 다치거나 기능을 잃었을 때에만 알아차릴 수 있는 몸의 일부다. 하지만 고도화되는 기술로부터 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각종 기기들은 버튼으로만 우리와 접촉할 뿐이다. 그들의 작동 원리와 구조는 알지 못한다. 점점 더 의존하게 된 테크놀로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을 출발점이다.
책은 3명의 저자가 각각 디지털 비평, 기계 비평, 적정기술로 나누어 썼다. 디지털 비평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사유의 폭을 어떻게 좁히고 일반대중 특히 디지털 기술 종사자를 소외시키는지 보여 준다. 또한 자본과 국가가 우리의 시간과 일상을 어떻게 탐하는지 설명한다. 기계 비평은 사진작가의 예리한 시선으로 야구장, 대형빌딩, 지하철역사, 대형 공연장 속의 기계를 세세히 살핀다. 점점 복잡한 유기체를 닮아가는 기계가 표면적으로 우리에게 보이진 않으나 어떻게 수면 아래에서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지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을 직접 찍은 현장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적정기술 편은 첨단 기술이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모든 이에게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사회·환경 여건에 따라 최적의 기술이 있는 것이지 시공간을 막론하고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선진국의 적정 기술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거주지, 환경 아래에서 분투하며 현장의 기술을 만들어가는 모습도 비춘다. <텃밭에서 읽다> 지난편에서 소개했듯이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가 지금처럼 자원 소비와 환경 파괴를 지속한다면 50년 내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적정 기술은 지속가능한 기술로서 이런 위협에 대처하는 훌륭한 도구이며, 그 효과를 발휘하려면 정책, 사회제도, 기술 플랫폼의 새로운 배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현대의 디지털과 기계 기술들은 일반 대중이 마음대로 주무르거나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전파사가 거의 사라졌고, 현재의 자동차 정비사들은 전기 자동차 앞에서는 무력할 것이다. 고도의 전문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자본과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기술은 더욱 일반 대중으로부터 분리된다. 일반 대중이 그들의 생리를 깊이 이해하거나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 변화·발전시키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오히려 그것을 아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지배당하기 십상인 영역이다. 소수 엘리트의 손에 놀아나지 않도록 기술의 생리와 속성을 이해해야 함을 저자들은 살핀다. 나아가 우리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우리가 가진 가치에 따라서 기술의 발전 방향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 자리한 적정기술편은 사회, 정치, 문화가 기술과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운영방식을 그동안의 것과 다르게 재배치해야 함을 주장한다. 앞으로 다가오는 로봇, 인공지능의 시대에 일자리를 잃을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정치인과 소수 전문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나서서 의논해야 할 일이다. 그러려면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이 우리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협의해야 한다. 따라서 무작정 기술만능 또는 기술혐오로 나아가지 말 것을 세 저자는 권한다. 기술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우리의 삶에 대해 성찰할 것을 권한다. 무거운 주제인듯하지만 풍성한 예화와 새로운 개념이 책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의미와 즐거움에 잡학상식까지 모두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생명 공학에 대한 비평이 없다는 것이 이 책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다.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 이후 생명공학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 유전자 복제·조작 등과 관련하여 풍성한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기술과 자본, 기술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좀 더 많은 질문을 남겨 두어도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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