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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텃밭에서 읽다] 고개를 들어 수평선을 보라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책세상

  한 여자가 자신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마진주’라는 이름의 여자는 자신의 방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한참을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낯설지 않은 곳이다. 여기가 어느 곳인지 어리둥절해 있는 참에 문이 벌컥 열린다. ‘빨리 안 일어나’하며 소리치는 사람은 바로 8년 전 돌아가신 엄마다. 요즘 필자가 즐겨보는 드라마 ‘고백부부’의 한 장면이다. 18년차 부부인 최반도, 마진주가 이혼 도장을 찍은 후 자고 일어났더니 두 사람 모두 과거 20살 시절 돌아가서 겪는 이야기이다. 반도, 진주 두 사람은 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갔으나 기억과 정서는 38살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으로서 먼저 살아본 경험과 이력으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필자도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후회했던 일들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나타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고 싶다. 대학 시절, 나는 평소 얼씬 거리지 않았던 종교 동아리에도 가보고, 졸업 후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도 수소문해 친구들과 함께 만나보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한 삶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줄 이들을 찾은 것이다.


 
  이 책,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의 주된 관심은 요즘 젊은이들의 불만을 해석할 수 있는 심리적 도구를 제시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대립한 오이디푸스의 반항하는 청춘이나 자신 속으로 빠져든 나르키소스의 자폐적인 고립을 선택한 청춘의 이미지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물리적 아버지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문화·경제 체제를 상징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심리학자”이며 심리분석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저자 레칼카티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사유에 기대어 ‘아버지와 아들’, ‘욕망과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분석학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나 작은 인내심만 가지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누구나에게 삶은 ‘타자’와 무관할 수 없다. ‘타자’의 인정과 평가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다른 인간 ‘타자’로부터 인정을 얻지 못하면 강아지, 고양이, 화초인 비인간 ‘타자’에게서라도 인정을 받고자 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하지만 끝도 모르는 경기침체, 빚더미와 함께 시작하는 사회생활, 비전과 직업의 부재는 청년들에게 욕망을 앗아갔다.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3년 반째 취준생인 한 청년은 사실은 취업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적 경제’쪽에 관심이 많지만 돈 문제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으로 청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비영리단체 ‘좀 놀아본 언니들’에 접수된 사연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고민을 깊이 털어놓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청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은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삶이 생동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전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본주의는 자유를 누리라며 부추긴다. 쾌락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만든다. 욕망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존재에 의해 ‘증언’될 때, 심리적 ‘고아’들이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시대 청년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텔레마코스이거나 텔레마코스가 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지인은 자신의 학생들이 텔레마코스 같다고 말한다. 강의 시간에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꼰대의 권위적인 설교가 아니라 삶의 파도를 몸으로 받아낸 인생선배의 ‘증언’에 목말라 있었을 게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텔레마코스의 시선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다. 눈이 멀어 바닥에 쓰러지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눈이 있어도 자신의 이미지밖에는 바라볼 줄 모르는 나르키소스와 달리, 텔레마코스는 바다를 바라본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운다. 누구라도 텔레마코스의 바다에서 돌아올 수 있다.” 저자는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를 심리 진단의 도구이자 이 시대의 청춘 또는 방황하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인문학 독서 및 강좌 열풍, 학습공동체, 도시농업공동체 등이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바다에 띄워진 배가 아닐까. 저자는 증인인 아버지는 ‘우연히’ 찾아 온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에게 그 ‘우연’이 찾아올 수 있도록 수많은 배가 띄워지길 기원한다.

2017년 8월 23일 수요일

[텃밭에서 읽다] 인간의 일상도 상품이다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민음사
 
이 책의 원제는 The Age of Access 즉, 접속의 시대이다. 노동의 종말, 부의 종말 등 비슷한 제목을 연상시켜서 홍보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국내 출판사의 의도에 의해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책은 소유의 종말에 대해 다루기 보다는 접속이 어떻게 물밀듯이 다가오는 지에 대해 말한다. 여러가지 사회 경제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접속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저자의 지적 탁월함과 통찰력을 대변해준다. 접속이라는 단어를 빼버린 제목이 유감스러운 이유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말한다. “이세상이 불편한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올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말한다. “인간의 일상도 상품화될 것이다. 시간조차도”
인간 생활 즉 문화도 모두 상품화된다. 문화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의미의 교집합이다.
예술가들은 그 문화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고 대중들과 서로 상호작용도 해왔다. 그 속에서 문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제 문화도 경제가 포섭해가고 있다. 문화적 경험과 그 경험이 존재하는 그릇인 시간이 팔리고 있다. 상업화되어가고 있다. 기업은 이제 인간생활을 모두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 1쇄가 출판된 2001년 당시에는 예측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스마트폰과 네이버, 구글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SNS와 유튜브는 사람들의 시간을 마구 흡입했고 그것은 창업자들에게 엄청난 부로 돌아갔다.


 
‘접속의 시대’에는 문화라는 것이 예전처럼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레 형태가 갖춰지는 것이 아다. 거대기업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진화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 모두를 지배하게 된다(233). 말 그대로 시공간 속에 살아가려면 거대기업에게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탈이란 더 이상 자유를 의미하지 못한다. 다른 브랜드를 가진 다른 기업의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이다(251). 아이폰을 버리고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태어나자마자 컴퓨터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며 사육당하는 인간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 매트릭스의 인간들처럼 자신은 자유롭게 거리를 거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환상 속에 머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 뜻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문화산업의 의도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16년 전에 출판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2016년 10월 30일 일요일

[텃밭에서 읽다] 온전한 나의 시간과 만나자

온전한 나의 시간과 만나자

<실행이 답이다> 이민규 저, 더난출판사

저자 이민규는 “실행은 답이다.”라고 말한다. 실행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일까? ‘생각을 성과로 이끄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책 중간에 자주 언급되는 ‘기업’, ‘비즈니스’라는 단어는 ‘실행’을 통해 얻는 ‘성과’를 자연스럽게 ‘성공’으로 치환하게 한다. 책의 뒷표지에 있는 “행복 인생과 성공 비즈니스를 꿈꾸는 당신을 위한 실천 지렛대”라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서문 말미에서 저자는 “실행은 자기의 재능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며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음을 알려준다. 필자는 ‘통제감’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바로 ‘실행’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을 나의 것으로 온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실행’이라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모래성 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그 순간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이다. 근사한 모래성이라는 ‘성과’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파도가 쳐서 모래성을 무너뜨리면 기뻐한다. 한 번 더 자신만의 온전한 시간을 누릴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출처 : 픽사베이


아침 출근길, 전철역 바로 앞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파란 불로 바뀌자 형광색 조끼에 노란색 모자를 쓴 할아버지, 할머님들이 노란 깃발을 펼치며 사람들의 길을 열어준다. 몇몇 사람들은 횡단보도선과 깃발의 범위를 넘어서 옆으로 빠져 걸으려 한다. 그때 건너편의 할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젓고 호루라기를 분다. 몇몇은 횡단보도선을 벗어나 대각선으로 걸으려다 다시 곧게 걷는다. 그런 광경을 보며 “참~ 융통성이 없는 분들이시네. 고리타분해. 어차피 길건너서 오른쪽 길로 가야하는데, 선 좀 벗어난다고 저 야단이셔.”라고 내뱉는다.
 
“내일 꼭 나와야 해! 부장님이 강조하셨다.” 내일은 토요일이지만 행사 참석을 위해 출근하라는 상사의 지시다. 이런 경우가 일상화되어 있지만, 아직도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월급을 준다는 이유로 내 시간, 내 삶이 통제당해야 하다니. 어쩌다 쓰는 휴가는 또 어떠한가. 급한 업무가 없어도 눈치를 보아가며 휴가 결재를 받아야 한다.
 
위의 2가지 예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삶에 대한 통제감에 관한 이야기다. 어르신들에게 건널목의 선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당신들의 일에 훼방을 놓는 이들이다. 그 순간에 대한 통제감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고 간단한 일이지만 자신이 좌지우지 하는 일이 아니라면 재미있을 리 없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이 주도적으로 처리할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보다는 상사가 시킨 잡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직급이 높은 상사일수록 지시한 일의 경중을 떠나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 그 순간 나는 일의 완급과 경중을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이다. 때때로 좌절감이나 낭패감을 맛보는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나의 시간, 나의 삶이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느껴질 때이다. 성공과 성과로 가는 사다리로서의 ‘실행’ 보다는 ‘통제감 높이기’의 디딤돌로서의 ‘실행’을 말하고 싶은 이유이다. ‘실행’은 자신의 순간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고삐이다.

“모든 변화는 저절로 움직이는 자가추진력을 갖고 있어 아주 작은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킨다.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치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121쪽)”
 
‘최소한의 일’이란 바로 당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실행’이 또아리를 튼 최소단위의 통제가능한 영역은 스스로를 확장시켜서 큰 변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변화에 실패하는 사람일수록 편지나 이메일의 회신이 늦고, 쉽고 즐거운 일만 하려한다는 대목은 무릎을 치게 한다. 바로 필자의 행태 그대로이다. 실행력이 탁월한 지인은 이 책을 읽었으나 흥미롭게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미 실행을 잘하는 사람은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처럼 무엇이든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에겐 반가운 책이다. 그런데 반갑기만 하고 거기서 멈출 가능성도 크다. 실행을 미루고 미루다 목표마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목차는 그대로 행동지침으로 써도 좋을 만큼 간결하고 명확하고, 문체는 평이해서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본문에 풍부한 상담사례와 자기동기화 3단계, ‘파생효과 노트’ 작성의 세 가지 효과 등등, 요점을 정리한 부분과 Stop&Think&Action과 같이 실행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어 여러분에게 권한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비슷한 내용을 여기저기에 배치해 놓아 중복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대체 ‘현재’는 어디에 있는가?”이다. ‘목표’만 있을 뿐 ‘지금’은 없다. 지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실행’과 관련된 내용은 ‘통제감’에 대한 내용정도다. 성공과 성과는 개인의 ‘실행’에만 달려있다고 강조하는 시각도 아쉬운 점이다.


 
 

2016년 9월 29일 목요일

[텃밭에서 읽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세상의 몸

우리가 먹는 음식은 세상의 몸<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다른 세상, 2008.1.7.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폴란은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며 환경운동가이다. 뛰어난 정원사이며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 자연, 식물, 음식 등을 통해 사회, 문화, 경제 문제를 독창적이고 깊이 있게 풀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세컨네이처’, ‘욕망하는 식물’, ‘나만의 자리’ 등을 썼으며,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는 정도가, 그리고 자연 세계가 달라지는 정도가 결정된다.”  26~27쪽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름 아니라 세상의 몸이다.”  518쪽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책이다. 정확히는 음식과 인간의 관계,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책이다. 지은이는 음식의 출발점에서부터 인간의 입에 이르는 과정을 탐험한다. 책 속에서 음식사슬이라고 일컫는 음식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고리를 직접 체험한다. 세상에는 세 가지의 주요 음식사슬이 있다. 산업적 음식사슬, 전원적(유기적) 음식사슬, 수렵·채집 음식사슬이 그것들이다. 이곳 한복판에 뛰어들어 구르고 헤엄치며 얻은 탁월한 통찰을 펼쳐보인다.
 
산업적 음식사슬은 현재의 인류가 접하는 대부분의 음식사슬이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음식, 평상시에 먹는 음식의 대부분이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도달한다. 이 음식사슬은 길고 복잡하지만, 옥수수 한 종이 절대적 지위를 가진다. 음식사슬을 장악하고 있는 몇 개의 기업과 미국 정부의 정책이 만든 결과다. 산업논리에 따라 미 평원의 대부분이 옥수수 밭으로 변했다. 가공이 쉬운 옥수수는 당, 전분, 지방으로 변신하여 날마다 우리 식탁에 오른다. 옥수수가 사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육식도 결국엔 옥수수를 먹는 셈이다. 그 결과로 농민 파산, 생물 다양성 저하, 생태계 오염, 시민의 건강 문제 등이 야기 되고 있다. 그러나 미 정부 정책은 흔들림이 없다. 기업이 통제하기 쉽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토양, 석유, 보건, 공공자금으로 치루는 비용을 감춘 체 말이다.

 
지은이는 전원적(대안적) 음식사슬을 들여다볼 수 있는 폴리페이스 농장에 방문한다. 그곳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초지와 소, 닭, 돼지, 농장 한켠의 숲은 서로 의지한다.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유기농의 이상이 실현되는 곳이다. 개체 모두의 고유한 욕구가 존중되는 곳이다. 농장주는 세계를 구하는 일이라며, 로컬푸드 운동에 앞장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 전역을 판매처로 상대하는 산업적 유기농이 연방정부의 개입으로 커져갔다. 마트를 찾는 대중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대량생산, 장거리 유통을 지향한다. 80칼로리 상추 수송에 4,600칼로리의 연로를 소비한다. 관행농의 연료 소비량과 비슷한, 지속불가능한 체계가 유기농이라 칭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짧고 오래된 음식사슬에도 필자는 뛰어든다. 바로 수렵·채집 음식사슬이다. 수렵·채집은 문명화 이전의 우리를 알게 한다. 우리 몸은 아직 구석기 시대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지구와 밀착했던 우리는 문명으로 인해 인간·지구 관계에 대한 의식이 모호해졌다. 하지만 지은이는 사냥과 채집을 통해 잠시나마 그 의식에 접근한다. 돼지 사냥을 통해 인간 존재는 음식사슬의 일부일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버섯채집을 통해 음식이란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520여쪽의 대작이다. 음식사슬과 그에 얽힌 생물학적, 역사적, 인류학적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풍성한 이야기가 책의 주제를 가끔 잊게 만들었지만 흥미진진하였다. 방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 현장취재는 그의 노고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지은이 표현대로 ‘불분명한’ 음식사슬에 의문을 가진 독자라며 반드시 읽어 보실 것을 권한다. 텃밭에서 음식거리를 일부나마 얻는 이들, 유기농에 관심이 많은 이들도 필독하시길 원한다. 주옥같은 정보와 음식과 인간의 관계,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보실 수 있다.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은 잘 쓴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016년 7월 4일 월요일

[텃밭에서 읽다]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텃밭에서 읽다]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욕망의 곤충학> 길버트 월드바우어, 출판사 한울림


이 책에는 우리가 모르거나 아예 관심 두지 않았던 것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집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당연히 밭에서는 무척이나 많이 접하게 되지만 무시했던 존재들 즉, 곤충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흔하디흔한 곤충들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가축은 보통 소, 말, 돼지, 닭을 이른다. 여기에 누에도 포함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누에는 철저히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서 야생 상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곤충이다. 그들의 누에고치는 인간들이 황홀하게 생각하던 비단의 원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옷감에 물들일 염료도 곤충에서 얻었다. 깍지벌레는 염료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곤충이다. 옷 위에 다는 장신구로도 이용했으니, 곤충이 사람 몸을 온통 휘감은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곤충은 문명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종이는 말벌집을 보고 만들게 되었으며, 잉크는 벌레혹으로부터 얻었다. 종이와 잉크가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만큼, 문명은 곤충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곤충의 쓸모 있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죽은 조직을 제거하고 소독까지하는 살아있는 치료제(구더기) 역할도 한다. 달콤함을 선사하는 벌꿀은 화상, 위궤양, 과민성 대장증후군에도 좋다! 식물이 만든 다양한 종류의 항생물질이 벌꿀에 응집되는 것이다. 여기에 오락거리로서 키워지는 귀뚜라미와 벼룩의 이야기도 다뤄진다. 벼룩 서커스라는 기상천외한 일도 실제로 있었음을 귀뜸해준다.
 
아마 저자는 마감에 쫓기지 않거나 책의 분량으로부터 자유로웠다면 더욱더 많은 곤충의 쓸모를 우리에게 알려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의 모든 사례들은 철저히 인간의 눈으로 본 작은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에게 쓸모 있는 것들의 이야기다. 왜 ‘욕망의 곤충학’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알것 같다. 철저히 인간의 욕구/욕망에 부합하는 곤충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본 곤충들. 인간은 자신에게 쓸모 있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곤충류는 95만 종 정도이며 아직 미확인된 종은 895만 종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겨우 전체의 10% 정도만 인간에게 알려진 것이다. 곤충 연구자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쓸모 있는 몇가지 종류의 곤충만 인간에게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의미 없지는 않을 터이다. 저자가 밝히듯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이 매혹적인 생명체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면 좋은 홍보 전략일 것이다. 쓸모 있는 것에서 존재 그 자체로 관심을 끄는 것으로 시선을 옮길 수만 있다면 말이다. 어떠한 생명이든 그런 존재이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의 인간도 쓸모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곤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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