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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6일 금요일

[텃밭에서 읽다] 도시농부의 친구가 될 책들

도시농부의 친구가 될 책들


  곧 시작되는 농사철을 맞이해서 도시농부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 몇 권을 소개합니다. 이 책들의 선정에 특별한 기준은 없습니다. 필자가 개인적인 선호로 선택하여서 도움 받은 책들입니다. 책 소개를 보시고 직접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다른 텃밭농사 안내서들과 비교해보시고 고르셔도 좋겠습니다.
 
1. 텃밭백과 유기농 채소기르기 (박원만 저, 들녘, 2007)



  제가 텃밭농사를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접한 책입니다. 우선 제 처지와 비슷했다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는 직장인으로 우연히 시작한 텃밭 가꾸기에 빠져서 주말을 고스란히 할애했다고 합니다. 많은 도시농부들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지요. 이 책의 장점은 첫째,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쓰레기라는 것을 모르는, 유기물이 순환하는 생태계를 본 뜬 농사법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저자는 비닐과 농약,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퇴비와 액비(액체비료) 만드는 법을 소개합니다. 둘째,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도 함부로 뽑지 말 것을 권합니다. 풀들이 작물을 압도하지 않을 정도만 관리하라고 말합니다. 작물마다 풀을 관리하는 법을 설명했습니다. 셋째, 84종이 나 되는 아주 다양한 작물들의 재배기록을 남겼습니다. 저자가 10년동안 길렀던 거의 모든 것을 담은 것 같습니다. 시장에서는 구입하려면 비싸거나 흔히 볼 수 없는 작물들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다른 책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작물들이 많습니다. 신선초, 염교, 리이크, 야콘, 돼지감자, 사탕수수, 벼룩나물, 배초향, 익모초에 심지어 인삼 재배방법까지 소개했습니다.
 
 
2. 도시농부 올빼미의 텃밭 가이드 1~3권 (유다경 저, 시골생활, 2013)


  이 책의 저자는 12년동안 거의 전업이다시피 매달려서 공부하며 텃밭농사를 지으셨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하는데요. 책은 총 3권으로 엄청난 분량을 자랑합니다. 제1권은 혼자 텃밭농사를 시작한 분들이 궁금해하지만 어디에 물어보아야할지 알 수 없었던 의문들을 해소해줍니다. 주말농장 구하는 방법, 작물 배치도 구상하는 법, 씨앗 봉투 읽는 법, 육묘하는 법, 천연농약 만드는 법 등의 정보를 실었습니다. 제2권에서는 46가지의 작물 재배법을 안내하고, 제3권에서는 요즘 각광 받는 각종 허브들의 재배법과 활용법, 갈무리 방법을 소개합니다. 상세하고 방대한 정보들로 매우 유용한 책인데요. 약간의 아쉬움이 있는데요. 비닐 멀칭과 화학비료에 대해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자의 판단을 존중해야겠지만, 전업 농부가 아닌 텃밭농부들이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있는지 저로서는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비닐과 화학비료 없이 텃밭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죠. 앞서 소개한 <텃밭백과>의 저자도 그 중 한분이고요.
 
3. 두근두근 처음 텃밭 (석동연 글그림, 위즈덤스타일, 2012)


  이 책은 제가 초보 텃밭농부인 친구들에게 선물한 책입니다. 책은 앞서 소개한 다른 책보다는 적은 분량을 가집니다. 하지만 텃밭농부들이 키울만한 작물의 재배법은 대부분 소개합니다. 목화나 수세미 같은 의외의 작물 재배법도 안내되어 있습니다. 만화가인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 곁들여진 해설은 재배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저자 자신이 텃밭농사를 하면서 실수하거나 느꼈던 에피소드 등을 컷 만화로 그려 만화책을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진과 정보 제공 만화, 컷 만화 등의 시각 정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질적인 정보는 모두 제공하면서도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따라서 초보자가 보기에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올해 처음 호미를 잡은 초보 텃밭농부는 이 책으로 농사를 시작했다가 궁금한 것이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앞선 책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4. 텃밭정원 가이드북 (오도 저, 그물코, 2013)


  농사에서 섞어짓기는 다른 종류의 작물을 나란히 함께 기르는 것을 말합니다. 섞어짓기는 바로 ‘자연의 다양성’을 텃밭에 옮겨 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흙도 건강해지고 작물도 병충해로부터 강해집니다. 굳이 비료와 농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죠. 저는 이 ‘섞어짓기’를 공부하고자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섞어짓기 좋은 작물이 있고, 피해야 할 작물이 있습니다. 감자는 콩, 옥수수와 섞어짓기 하면 좋지만, 토마토 옆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각종 작물의 섞어짓기 궁합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안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텃밭정원’을 소개합니다. 채소와 꽃이 함께 어우러진 정원을 만드는 법을 보여줍니다. 먹을 수 있는 수많은 꽃들로만 이루어진 정원의 구성도도 실려 있습니다. 입 뿐만 아니라 눈도 즐거운 밭으로 안내합니다. 좀 더 생태적이고 아름다운 텃밭을 원하는 분들게 추천합니다. 하지만 작물 재배법은 비교적 간략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안내서도 함께 보실 것을 권합니다.
 
(추신) 
  어떤 책을 선택하든지 초보 농부님들이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책마다 나와 있는 재배표에 전적으로 의지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당근과 양배추 등을 책 속 재배표 대로 파종하였으나 제대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양배추는 수확이 늦어져 장맛비에 녹아 버렸고, 당근이 자라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느렸습니다. 다 자란 당근들도 크기가 매우 작았습니다. 그 씨앗들은 좀더 일찍 파종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씨앗 봉투에 적혀있는 재배표가 해당 씨앗에 제일 적합한 재배 시기를 알려줍니다. 안내서들에 나온 재배표는 대체적인 감각을 기르는 데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텃밭에서 읽다] 고개를 들어 수평선을 보라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책세상

  한 여자가 자신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마진주’라는 이름의 여자는 자신의 방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한참을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낯설지 않은 곳이다. 여기가 어느 곳인지 어리둥절해 있는 참에 문이 벌컥 열린다. ‘빨리 안 일어나’하며 소리치는 사람은 바로 8년 전 돌아가신 엄마다. 요즘 필자가 즐겨보는 드라마 ‘고백부부’의 한 장면이다. 18년차 부부인 최반도, 마진주가 이혼 도장을 찍은 후 자고 일어났더니 두 사람 모두 과거 20살 시절 돌아가서 겪는 이야기이다. 반도, 진주 두 사람은 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갔으나 기억과 정서는 38살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으로서 먼저 살아본 경험과 이력으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필자도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후회했던 일들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나타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고 싶다. 대학 시절, 나는 평소 얼씬 거리지 않았던 종교 동아리에도 가보고, 졸업 후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도 수소문해 친구들과 함께 만나보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한 삶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줄 이들을 찾은 것이다.


 
  이 책,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의 주된 관심은 요즘 젊은이들의 불만을 해석할 수 있는 심리적 도구를 제시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대립한 오이디푸스의 반항하는 청춘이나 자신 속으로 빠져든 나르키소스의 자폐적인 고립을 선택한 청춘의 이미지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물리적 아버지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문화·경제 체제를 상징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심리학자”이며 심리분석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저자 레칼카티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사유에 기대어 ‘아버지와 아들’, ‘욕망과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분석학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나 작은 인내심만 가지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누구나에게 삶은 ‘타자’와 무관할 수 없다. ‘타자’의 인정과 평가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다른 인간 ‘타자’로부터 인정을 얻지 못하면 강아지, 고양이, 화초인 비인간 ‘타자’에게서라도 인정을 받고자 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하지만 끝도 모르는 경기침체, 빚더미와 함께 시작하는 사회생활, 비전과 직업의 부재는 청년들에게 욕망을 앗아갔다.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3년 반째 취준생인 한 청년은 사실은 취업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적 경제’쪽에 관심이 많지만 돈 문제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으로 청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비영리단체 ‘좀 놀아본 언니들’에 접수된 사연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고민을 깊이 털어놓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청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은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삶이 생동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전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본주의는 자유를 누리라며 부추긴다. 쾌락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만든다. 욕망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존재에 의해 ‘증언’될 때, 심리적 ‘고아’들이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시대 청년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텔레마코스이거나 텔레마코스가 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지인은 자신의 학생들이 텔레마코스 같다고 말한다. 강의 시간에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꼰대의 권위적인 설교가 아니라 삶의 파도를 몸으로 받아낸 인생선배의 ‘증언’에 목말라 있었을 게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텔레마코스의 시선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다. 눈이 멀어 바닥에 쓰러지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눈이 있어도 자신의 이미지밖에는 바라볼 줄 모르는 나르키소스와 달리, 텔레마코스는 바다를 바라본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운다. 누구라도 텔레마코스의 바다에서 돌아올 수 있다.” 저자는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를 심리 진단의 도구이자 이 시대의 청춘 또는 방황하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인문학 독서 및 강좌 열풍, 학습공동체, 도시농업공동체 등이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바다에 띄워진 배가 아닐까. 저자는 증인인 아버지는 ‘우연히’ 찾아 온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에게 그 ‘우연’이 찾아올 수 있도록 수많은 배가 띄워지길 기원한다.

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텃밭에서 읽다] 일제는 조선인에게 2차 방정식도 배우지 못하게 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 정인경 지음, 돌베개

  “한글은 과학적 원리에 따라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 “원전은 안전하다. 과학적 설득이 먹혔다”. “과학이 공포를 이겼다.” 신문기사에서 삽입된 문구들이다. 과학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엿볼 수 있는 발언들이다. 과학은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척도라는 것으로 읽힌다.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이전의 이론들이 대체되는 것을 보면서 요즘 대중들도 과학이론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시스템은 현재에 정설로 굳어진 과학지식에 대해선 객관적이고 진리의 일부분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재판에서도 유전자 검사결과는 객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과연 과학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일까?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한국인의 입장에서 서양과학사를 응시하면서 이런 의문을 풀자고 나선 책이 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우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과학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 정인경은 한국 과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우리의 눈으로 과학을 바라보며 그것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책은 서양사에서 근대과학 등장의 의미와 역할, 서양인들의 근대과학에 대한 해석과 왜곡, 일제식민지 아래의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본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국의 근대문학에서 과학에 대한 당시 우리의 시선이 어떠했는지 밝힌다. <무정>, <표본실의 청개구리>,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날개> 등 유명한 작품들을 인용하여서 흥미를 돋운다.

 

  서양인들은 뉴턴과학의 탄생으로 과학이 진리이며 인간 문명의 진보를 이루게 할 ‘인간의 이성이 곧 빛’이라고 보았다. 근대과학은 중세의 세계관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뉴턴은 만유인력과 3가지 운동법칙으로 자연세계의 움직임을 예측했다. 진리는 성경이 아니라 자연세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뉴턴이 보여주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려면 이성을 통해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서양인들은 생각했다. 뉴턴은 자연현상을 해석했을뿐이지만 유럽인들은 그곳에서 권력과 교회로부터 벗어난 주체적인 인간을 발견했고 자신들의 또 다른 성경을 찾았다. 과학은 그들에게 진리이자 진보였다. 과학주의가 유럽인들에게 스며들었다. 과학이 세상 사람들을 계몽할 것이라는 믿음도 가졌다. 이것은 곧 식민지 국가의 전통, 역사, 문화를 폄하하고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근대화가 곧 문명화라고 믿었다. 저자는 이광수의 소설 <무정> 속에서 그 모습을 본다. 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과학으로 민중을 가난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주인공들을 보여준다.
 


  유럽사람들 중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당대에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후속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진 1940년대 이후에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다윈 당시의 유럽인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진화론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였다. 그들은 ‘비인간적인’ 세상에 대한 다윈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윈이 주장하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자연은 인간이나 생명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무심하고 실수투성이며 우연에 좌우될 뿐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유전적 변이와 환경이라는 우연성에 의지하는 일이고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연선택에는 목적도, 방향도, 미래도 없었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진화는 진보’라고 이야기하며, “어떤 목적과 방향으로 진보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이론이다. 스펜서는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으로, 혼란한 것보다 질서 잡힌 것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진화로 생각한 유럽 제국주의는 식민지인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진화 즉 우월한 유럽인은 열등한 인종들을 가르치고 문명화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내려온 목적론적 세계관과 이데아 즉 본질을 찾는 철학에 종말을 고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제국주의가 이용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욕망이 투영된 진화론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근대의 실험 대상이자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흑인종이나 황인종을 박람회의 전시물로 만들었다. 당시 조선인이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과연 무어라 말했을까. 오히려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큰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다윈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너희가 그렇게 강해진 것은 우연일뿐이며 강하다고 하더라도 우월하다고 볼 수 없으니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은 부당하다. 너희가 문명인이라면 당장 침략과 약탈을 멈추어라.”
 


  일제식민지 시절, 친일인사들은 일제의 과학기술이 우리의 과학 수준을 끌어올릴 것이며, 식민지 개발과 산업화가 결국 조선인에게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 주장했다. 과학기술의 보편성과 가치중립성을 강조했다. 이는 착각이었다. 제국주의에게 과학기술은 식민지를 착취하는 도구일뿐이었다. 경성에 들어온 전등과 전차는 일본인 거주지역에 집중되었으며, 함경남도 부전강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디는 전력량은 조선에서 사용하는 전체 전기량의 네배였지만, 일본질소와 흥남 비료공장에만 공급하였다. 그 발전소를 짓기 위해 쫓겨난 농민, 건설공사 중 죽어가거나 불구가 된 조선인들은 잊혀진 채로. 화려한 전기불과 물질적 풍요는 일본인들만을 위한 성찬이었다. 식민지가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말하는 자 있지만 그 당시 학교에서는 조선인들에게 영어도, 2차방정식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운 관문을 뚫었던 조선의 과학 인재들은 연구할 곳을 구할 수 없었다. 그들의 절망감과 고통은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이상의 <날개>에서 묘사됨을 저자는 찾아내었다. 근대과학은 오로지 자본주의의 산업화와 세계화에 이용되었다. 식민지 개발이라고 제국주의자들은 주장하지만 그들이 식민지가 없었다면 그런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을까?


 
  과학은 실재하는 세상에 대한 지식이지만, 민낯 그대로 인간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 당시 사회, 역사, 문화적 맥락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나타난다. “과학기술은 사회적 논쟁과 얽히면서 구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갈릴레오의 낙하실험, 뉴턴의 만유인력, 패러데이의 전기장, 보일의 진공실험 등은 모두 논쟁대상이었다. 지금의 과학은 그러한 논쟁들을 통과하였고 인간의 욕망에 의해 구성되었다. 뉴턴과 보일은 실험이라는 새로운 과학 연구의 방법론을 정착시켰는데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윈이 생명에는 본질적인 모습이란 없다고 했던 것처럼, 어쩌면 과학에도 본질적인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닐까? 과학은 세상과 나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과학이 감정과 가치를 동반하여 재구성된 지식이라고 말한다. 근대과학은 서양인들의 감정과 가치가 반영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과학책을 읽는 이유가 단지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의 감정과 가치가 반영된 과학을 만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기는 공적인 과학연구는 대부분 정부의 출연금으로 지원된다. 과학은 사회의 것이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가 관심을 놓치 말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과학은 결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2017년 9월 20일 수요일

[텃밭에서 읽다] 지리산에 진짜 도시가 있다!

<시골생활: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 2015, 정상순

  ‘시골생활’이란 단어를 막닥뜨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 떠올린다. 낙후된 곳, 고된 농사일, 빚더미, 단조로움, 고립, 불편함 등이다. 요약하면, ‘불편하고 힘든 생활’이리라. 하지만 이 책 ‘시골생활’은 이런 편견을 날려버리며 ‘나도 시골생활을 해볼까나’라고 꿈꿔보게 한다.



  ‘시골생활 -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의 저자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그 둘레인 구례, 남원, 산청 등의 크고 작은 공간과 모임, 사람들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인 만든 ‘마을극단’, 경제활동과 문화적 욕구가 만나는 장터 ‘콩장’, ‘저절로 굴러가는’ 잡지 편집모임 ‘지글스’, 집 아닌 다른 공간을 제공하는 ‘토닥’, 자립과 연결의 욕구가 만든 ‘살래청춘식당 마지’, 연결의 묘미를 알게하는 카페 ‘빈둥’, 조용히 살려고 귀촌한 필자를 끌어들인 지리산 문화공간 ‘토닥’, 또래 엄마들의 협동조합 ‘자연에서’까지 이들은 대부분 작은 공간이나 한 두명에서 비롯되었다. 서로 친밀감과 아이디어를 쌓아가며 이런 저런 실험을 했다. 장터도 만들고 잡지도 만들고 강좌도 만들고 콘서트장과 놀이터도 만들었다. 그로 인해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아이디어가 모여들었다. 그들의 물리적 ‘공간’은 기억과 역사가 쌓여가며 대체할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사람이 공간을 장소로 변화시켰다. 카페 ‘토닥’은 10년 된 호프집에 자리했다. 그곳엔 집 아닌 다른 공간, 소통과 다양한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의 놀이터이며 꿍꿍이의 장소다. 호프집이나 ‘토닥’이나 사람이 모이는 장소인 것은 매한가지인데, 무엇이 다를까. 호프집에 모이는 사람들은 아마도 동일한 사람들과 주로 만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10년 내내 했을게다. 몇 년에 1번씩 보는 학교 동창들이 주로 뻔한 이야기판을 벌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토닥’을 비롯한 필자가 방문한 공간들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면의 욕구를 끌어내는 자극에 몸을 맡기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해 보는 장이다.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의 저자는 도시와 ‘시골’을 나누는 기준을 다양함에서 찾았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여 사는지,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지가 도시와 ‘시골’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접근 가능한 여러 자원과 활동, 인적 네트워크가 도시 여부를 판가름한다.
한국인 10명 중 9명은 도시에 산다. 나도 그렇다. 나를 포함한 도시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매우 단순하게 보낼 것이다. 아침 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출근길에 나서고 저녁 늦게 퇴근해 술을 마시거나 집에서 텔레비전 또는 스마트폰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까? 가끔씩 몰링과 블록버스터 영화로 문화생활을 즐기고, 교외로 나들이 가며 괜찮은 인생이라 자위하지 않을까. 우리의 도시는 우리에게 다양한 자원과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맞는가. 제공하지만 도시살이의 버거움으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도시에서 사는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게 아닌가.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도시’ 속에서 고립되어 ‘도시’를 견뎌내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지리산 둘레의 ‘시골살이’엔 다채로운 공간이 있고, 사람들과의 접촉이 있고 다양한 실험이 있다.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진짜 도시는 지리산에 있다. 살만한 도시를 만들고 싶다면 저 지리산 ‘시골살이’를 돌아볼 일이다.

2017년 5월 22일 월요일

[텃밭에서 읽다] 50년 후 인류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 에코페미니스트의 행복혁명> 강남순 외 지음, 시금치


  ‘문명의 붕괴’, ‘총·균·쇠’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가 지금과 같이 계속 소비한다면 지구의 광물, 생물 자원이 남아나지 않으며 기후 재앙이 50년 내에 우리를 삼킬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삶에 큰 문제가 있음을 경고한다. 


  한달에 20일 이상을 미세먼지로 숨 쉬는 것 자체가 걱정이고 방사능 공포도 한 몫 한다. 기후 변화로 큰 태풍과 가뭄이 반복되며,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자본주의는 성장을 향해 달려가라고 우리를 채찍질 할 뿐, 우리의 최소한의 안정된 삶과 안전 심지어는 생명에조차도 관심이 없다. 쉴 틈 없이 일하지만 미래는 늘 불안하고, 일상 자체가 위협으로 둘러 싸여 있다. 환경호르몬은 여성들을 공격하고 있지만 피할 방도가 없다. 일상의 삶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에코페미니즘은 ‘생태학(ecology)’과 ‘페미니즘’이 결합한 단어이고,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는 사유와 실천의 집합이다. 1970년대에 모습을 갖추었으며, 이후로 계속된 논쟁과 실천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나 여전히 진화 중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생태 위기와 성차별 문제가 동일한 가부장제의 사회구조 아래에서 발생했다는 인식을 가진다. 위에서 말했듯 생활 자체, 삶 자체가 상존하는 위협 아래에 있으므로 이런 불안과 공포의 구조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하려는 것이 에코페미니스트들이다.


  이 책은 여성환경연대가 2014년 열었던 ‘에코페미니즘 학교’를 계기로 30~60대 여성들로, 여성단체 활동가, 농부, 연구자, 직장인 등의 다양한 출신의 15명의 글을 한데 모아 만들어졌다. 글쓴이가 다양한 만큼 글의 내용과 결은 다채롭다. 에코페미니즘의 이론과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여러 현장에서 얻은 성찰과 깊은 고민까지 엿볼 수 있다. 지금의 세상에서 여성·자연·유색인종·동물·성소수자는 열등한 존재다. 남성·문화·백인·인간·이성애자는 우월하고 본질적인 존재다. 우월한 존재는 열등한 존재를 물건처럼 취급하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열등한 존재들은 존중받지 않아도 된다. 이 세상은 상품을 생산하는 활동만을 인정해준다. 당장 돈이 벌리는 노동만이 가치가 있다. 사실 이런 세상은 우리 눈 속의 컨택트 렌즈를 벗어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이런 세상이 ‘자연스러운’ 세상이라고 교육받으며 사회화 되었다. 그것을 알려주고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 에코페미니즘이다. 얼마 전 어머니와 통화했다. 잘 지내시냐는 물음에 “집에서 노는 데 별일이 뭐가 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생을 양육과 가사일을 했으며 그 덕분에 망가진 몸을 가졌음에도 가사일을 쉴 수 없는 어머니는 자신을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돌봄 노동’을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수많은 여성 중의 한분이다. 자연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개발 대상이다. 개발되지 않은 자연은 아직 돈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곳이다. 발전이 안된 곳이며 불편한 곳일뿐이다. 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생태학자 토니 주니퍼는 화폐가치로 답한다. 매년 인간의 활동으로 훼손되는 자연의 가치는 6조 6000억 달러라고. “자연은 보험회사, 질병 관리관, 쓰레기 재활용 시설, 수도회사, 해충 방제관, 태양에너지 전환 장치”이다.


  에코페미니즘은 ‘돌봄 노동’ 중심 사회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전업주부, 동네 청년, 노인, 자원활동가, 예술가, 자급하는 소작농들은 산업 사회에서 무능한 존재들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로 중요한 일을 한다. 양육 및 가정 살림, 이웃과의 교류, 자원 활동, 동네 텃밭 가꾸기, 아이들의 등하교길 안내, 토종 씨앗 지키기, 탈핵의 중요성 알리기, ‘희망버스’ 타고 밀양 할매들 응원하기 등등. ‘돌봄 노동’은 아이를 양육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인류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게 하는 필수적인 노동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좋은 삶’을 위해서 “지속적인 자연 파괴와 자원 고갈을 촉진하는 소비라는 집단적 감각”으로부터 탈출할 것을 제안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한 인류 멸망의 시기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면 생태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에는 타율노동, 자활노동, 자율노동이 있다. 타율노동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임금 노동을 가리키고, 자활노동은 육아, 청소, 가사 등 생명의 성장과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노동이며, 자율노동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하는 능동적인 활동이다. “타율노동에 의해 잠식된 사람은 ‘소비’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요리, 청소, 육아 등을 타인에게 돈을 주고 맡김으로서 그들에게 ‘타율노동’을 하게 한다. “타율노동 중심의 삶은 자본에 모든 인간을 구속”시킨다. “고르는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이” 자활과 자율노동의 비율을 높이며 생태적 삶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돌봄 노동가 의미와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음을 사회가 인정하게 하고 생태적 삶 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정책·문화의 전 부문을 바꾸어야 한다. 누군가는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는 1948년에 군대를 없앴고 2007년 ‘자연과의 평화’ 정책을 수립하여 지금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100%에 육박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국민총생산 즉 경제 성장에 매달릴 때 “자연과 평화를 추구”했다. 부탄 국민들은 국민총생산은 낮아도 행복지수가 높기로 유명하다. 부탄은 생태학적 다양성과 회복력 등을 포함한 국민행복지수 높이기를 국정의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의 방식으로 인류가 살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50년이 남았다고 한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다며 그들은 70살이 되기 전에 큰 재앙을 맞는다. 요즘 희망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새 대통령이 부탄의 행복정책에 관심이 많다는 소식이다. 얼마든지 다른 삶, 다른 세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미세먼지, 땅 꺼짐, 각종 대형 재난사고, 여성 혐오 사건 등 일상적 위험이 수시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때 에코페미니즘은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도움 받은 자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312345125&code=210100 [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 지성과의 대화](1) ‘총균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경향신문, 2013-12-31
100% 눈앞, 한겨레, 2017-01-04
http://www.ohmynews.com/NWS_Web/Articleview/article_print.aspx?cntn_cd=A0002149590 4대강 파헤친 대가, '빚잔치'로만 끝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2015-10-09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4880.html ‘부탄 예찬’ 문 대통령, 행복 정책 도입할까, 한겨레, 2017-05-15

2016년 8월 15일 월요일

[텃밭에서 읽다] 유럽의 백인이 지구를 정복한 이유

[텃밭에서 읽다] 유럽의 백인이 지구를 정복한 이유
<총, 균, 쇠> 2005,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
 
출처 : 픽사베이

왜 유럽의 백인들이 남북아메리카를 비롯한 지구 위 대부분의 땅을 정복했는가? 왜 그밖의 사람들은 정복할 수 없었는가? 왜 어느 사회는 우주선을 만들고, 어느 사회는 돌도끼만을 만들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현대 세계의 불평등의 궁극적 원인을 밝히려 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들었던 게으른 민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것은 편견일 뿐이다. 머리 좋은 유럽인이어야만 발명가가 될 수 있다는 편견도 깨버린다.(근현대의 대다수의 발명은 유럽인들이 해냈다.) 이 책은 막연한 통념과 편견을 깨어 준다. 결론은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인종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집어 삼킬 수 있었던 것은 기술, 전염병, 중앙 집권적 정치조직, 그리고 문자 덕분이었다. 이것들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근복적인 원인 때문이다. 식량생산력, 조밀한 대규모의 인구, 야생 동식물의 가축화·작물화 가능 여부, 대륙의 지리적 환경이 그것이다. 저자는 원인들 하나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나는 저자의 결론에 대해 말하기 보다 이러한 생각거리에 대해 말하고 싶다.

첫 번째 생각거리
“대부분의 농경민은 수렵채집민들보다 잘 산다고 말하기 어렵다”(160쪽) 우리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지금의 우리가 아마존 정글 속에서 수렵채집민으로 사는 사람들 보다 잘 산다고 말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결국 변화하는 자연 및 문화적 환경에 맞춰 ‘진화’된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결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는 민족에게 다가가서 석기 대신 스마트폰을 쥐어 주는 것이 결코 정당한 짓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화’된 인류의 대부분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야 할 것인가? 수렵채집민들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수렵채집민들은 하루에 3시간만 일했다.
출처 : 픽사베이

 두 번째 생각거리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다”(349쪽) “기술은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발견된다”(353쪽) “사실 수많은 발명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이것저것 주물럭거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발했고, 수요 따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일단 어떤 물건이 발명되면 그때부터 발명자는 그것의 용도를 찾아내야 했다.” 이렇게 발명된 기술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합리적 판단이 내려져 그 사회에 수용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이점, 사회적 가치관, 기득권과의 충돌 등이 수용에 관여한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적정기술의 빠른 확산이 안 이루어지는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겠다. 과연 기술은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가? 나는 어떤 태도로 기술을 대해야 할까?
 
세 번째 생각거리.
대학시절, 친구는 모든 집단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효율적이고 좋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금방 반론했다. 재벌기업은 권위적인 조직체계를 가졌지만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 말에 친구는 주춤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나라 재벌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지금의 부를 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렇더라도 일사분란한 수직적 조직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러려면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체제의 조직보다는 피라밋 체제의 중앙 집권적 조직이 더 적합할 것이다. 적들이 밀려오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토론만 하다가는 죽기 십상일 것이다. 저자도 “갈등해결, 의사결정, 경제, 인구밀도 상승에 따른 공간 활용”(432쪽) 문제 등을 고려하면 대규모 사회가 결국 중앙집권화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한 사회는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이룰 수 없는 일을 성사시킨다. 하지만 중앙집권적이고 비평등한 사회에서 ‘도둑 정치’는 소수의 지배자들만 살찌운다. 개인의 능력 보다는 그 체제의 속성상 불평등한 관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출처 : 픽사베이
우리나라는 구제금융기 이후에 계층간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그들이 ‘무력을 독점’하고 ‘대중이 좋아하는’ 맛집과 연예인들을 제공하는 우리 사회는 ‘도둑 정치’의 지배방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나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 아닐까. 좀 더 영리한 ‘도둑 정치’가 있을 뿐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맛집과 연예인들로 힘겨운 일상을 이겨내거나 로또 당첨만을 기다려야 할까? 평등화된 중앙집권화 조직을 기다려야 할까? 그것은 가능한 걸까? '평등'과 '중앙집권화'라는 단어 사이엔 모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윤리, 도덕, 좋은 삶, 자유, 평등, 행복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무리사회, 부족사회, 추장사회, 국가사회로 ‘진화’한 인류사회는 결코 개개인이 인간답게 사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척이나 의식적인 일이다. 우리가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다.

2016년 7월 4일 월요일

[텃밭에서 읽다]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텃밭에서 읽다]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욕망의 곤충학> 길버트 월드바우어, 출판사 한울림


이 책에는 우리가 모르거나 아예 관심 두지 않았던 것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집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당연히 밭에서는 무척이나 많이 접하게 되지만 무시했던 존재들 즉, 곤충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흔하디흔한 곤충들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가축은 보통 소, 말, 돼지, 닭을 이른다. 여기에 누에도 포함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누에는 철저히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서 야생 상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곤충이다. 그들의 누에고치는 인간들이 황홀하게 생각하던 비단의 원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옷감에 물들일 염료도 곤충에서 얻었다. 깍지벌레는 염료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곤충이다. 옷 위에 다는 장신구로도 이용했으니, 곤충이 사람 몸을 온통 휘감은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곤충은 문명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종이는 말벌집을 보고 만들게 되었으며, 잉크는 벌레혹으로부터 얻었다. 종이와 잉크가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만큼, 문명은 곤충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곤충의 쓸모 있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죽은 조직을 제거하고 소독까지하는 살아있는 치료제(구더기) 역할도 한다. 달콤함을 선사하는 벌꿀은 화상, 위궤양, 과민성 대장증후군에도 좋다! 식물이 만든 다양한 종류의 항생물질이 벌꿀에 응집되는 것이다. 여기에 오락거리로서 키워지는 귀뚜라미와 벼룩의 이야기도 다뤄진다. 벼룩 서커스라는 기상천외한 일도 실제로 있었음을 귀뜸해준다.
 
아마 저자는 마감에 쫓기지 않거나 책의 분량으로부터 자유로웠다면 더욱더 많은 곤충의 쓸모를 우리에게 알려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의 모든 사례들은 철저히 인간의 눈으로 본 작은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에게 쓸모 있는 것들의 이야기다. 왜 ‘욕망의 곤충학’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알것 같다. 철저히 인간의 욕구/욕망에 부합하는 곤충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본 곤충들. 인간은 자신에게 쓸모 있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곤충류는 95만 종 정도이며 아직 미확인된 종은 895만 종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겨우 전체의 10% 정도만 인간에게 알려진 것이다. 곤충 연구자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쓸모 있는 몇가지 종류의 곤충만 인간에게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의미 없지는 않을 터이다. 저자가 밝히듯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이 매혹적인 생명체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면 좋은 홍보 전략일 것이다. 쓸모 있는 것에서 존재 그 자체로 관심을 끄는 것으로 시선을 옮길 수만 있다면 말이다. 어떠한 생명이든 그런 존재이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의 인간도 쓸모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곤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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