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3일 월요일

[박노자 인터뷰] 1 - 노르웨이 텃밭, 아이들 제대로 키우기 위해 시작!



노르웨이 도시텃밭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마지막으로 박노자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외지인으로 알지 못했던 노르웨이의 도시텃밭이야기 그리고 시민사회이야기를 좀 더 깊이있게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로 했다. 박노자(본명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티호노프) 교수는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1991년 한국으로 유학하였고 95년 한국 바이올린 연주자와 결혼하였다. 소련출신의 교육인·언론인·사회운동가·역사학자·한국학자로, 반파시즘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잘 알려진 이름인 '박노자'는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필명이며,  2000년 노르웨이로 건너가 오슬로 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로 근무중이다. (편집자 주)
지난 월요일 오슬로대학교 인문대학 건물에서 박노자교수를 만났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여러가지 사회문제와 더불어 북유럽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지고 이중 도시농업(도시텃밭, 콜로니하게)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도 더해졌다. 먼저 출신지인 소련의 이야기부터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김보혜 : 제가 러시아의 도시농업의 형태에 대해서 한 줄 정도 전체 문헌 중에 있었던 거를 봤는데... 공장에서 공동으로 경작을 해서 공장 안에서 식량의 재료로 쓴 게 도시농업의 형태의 하나로 소개된 걸 본적이 있어요.

박노자 : 옛날에 소련 땐, 공짜텃밭을 받을 수 있었어요. 도시농업은 없었는데 누구나 농업 할 순 있었어요. 근데 소련이 도시농업 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노는 땅이 너무 많아서 도시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농사할 수 있었거든요. 노동자한테는 ‘다차’라는 별장을 주고 그랬는데, ‘다차’를 준다기 보다 공재 그러니까 만들 재료를 주고 알아서 만들었던거죠. 땅을 주고 재료 주고 본인이 알아서 건설하는 거죠. 그리고 특히 러시아에서는 별장에서의 텃밭이 90년대 경제난 때 수 많은 사람들이 그걸로 목숨을 건졌죠. 그때 공업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고 임금도 다 체불되고 (했는데) 그 때는 텃밭으로 먹고 산 사람들이 많았어요.


김보혜 : 그것들을 판매한 건가요?


박노자 : 보통 개인 가정이 소비를 하는 거지요. 연금생활자들이 너무 궁핍했거든요. 지금은 나아졌는데 그 당시 연금은 미국돈으로 2-30불이었어요. 한국돈으로 2-3만원 정도. 그때는 많은 연급생활자들이 노령에도 불구하고 밭에 나가서 감자도 가꾸고 그걸로 먹고 살았죠. 텃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진거지요. 그건 제가 아주 뚜렷하게 기억해요. 텃밭이 거의 생명줄 이었어요.


러시아의 다차 (사진출처:https://www.telegraph.co.uk)
러시아 연방정부에 등록된(2004년) 다차는 약 3,200만개로 도시민의 70% 인구 4.5명당 1개의 다차를 소유하고 있다. 이는 약 40~50%의 농산물이 다차에서 생상되고 있으며, 감자의 경우 90%이상을 다차에서 생산한다. (2011, 개발사업에서의 도시농업 도입방안, 도지주택연구원) 
김보혜 : 노르웨이에서 도시농업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박노자 : 노르웨이 같으면 ‘할덴(Halden)’이라는 곳에서 시작했다고 그래요. ‘할덴’이라는 도시에서 도시농업실험을 했다고 그러는데, 그걸 콜로니하게라고 하지요. 크리스티안(오슬로의 옛이름)에선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곳을 다시 가꾸어서 콜로니하게를 만들기 시작한 게 1907년인데, 그때는 그것을 일차적으로 아이를 가지고 있고 아파트에 사는 빈민층에게 많이 주었어요. 그 당시 노르웨이 사람들한테 빈민아파트는 아주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거든요. 공기도 안 좋고 땅을 밟기 어렵고 직접 식물을 체험하지 못하니 교육에 치명적이죠. 노동하는 도시빈민들에게 아이를 땅과 친하게 만들 기회를 주는 그런 의미에서 줬다는 얘기죠. 콜로니하게가 그렇게 시작이 되었어요. 근데 그 후로는 많이 커졌죠. 1920년대에는 전국 콜로니하게연합(Norsk kolonjhageforbund)이 만들어지고, 그 때부터 콜로니하게 문화가 도시농업 문화로 조금씩 정형화되기 시작했어요.

김보혜 :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콜로니하게는 휫떼가 있는 정원인거죠?

박노자 : 일종의 별장이라고 할까, 간이주택이 있는 정원이지요. 그게 콜로니하게지요.

김보혜 : 물론 그것을 도시농업의 한 형태로 보기는 하는데, 사실 저희 집 앞에도 콜로니하게가 있는데 정원 혹은 휴식처, 이런 모습으로 보이거든요.

박노자 : 그런 것도 있고 실제 가꾸기도 하고. 콜로니하게의 재미있는 부분은 그게 탈시장화 되어있는 공간이라는 거지요. 마음대로 팔 수가 없어요. 일반 상품이 될 수가 없는 거지요. 가격은 정해져 있거든요. 만일 쓰다가 그만 쓰자면 연합에다가 반환을 하고 정해진 가격만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 투기를 못하는 거예요. 투기억제책이 시행되는 거지요. 말하자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아무나 산다기 보다는 연합에 신청을 해서 받는 거지요. 그게 사실 좋은 겁니다. 그게 안됐으면 엄청나게 땅 값이 올랐을 거고 투기화됐을 겁니다. 잘 한 거죠.

김보혜 : 제가 듣기로는 저의 집 앞에 있는 콜로니하게는 시에서 관리한다고 들었는데 선생님 말씀으로는 연합이 따로 있다는 건가요?

박노자 : 아… 시에서 관리를 하지요. 시는 재정적으로는 하고 직접 관리는 연합 노르게 콜로니하게가 하는 거고요. 왜냐하면 시는 그 땅을 분양해야 하니까 재정적 책임은 시에 있지요. 거기는 실무를 보는 거 같고요. 최종적 책임은 당연히 시가 지고 있지요. 그리고 노르웨이의 대부분의 그런 NGO들이 거의 다 예산을 받고 있어요. 국가나 지자체 예산을 받고 있어요.

김보혜 : 한국과 노르웨이는 환경적으로 많이 다르고 일상도 많이 다르죠. 100년간 도시농업을 지켜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노자 : 이유는 아주 단순하죠. 그래야 아이가 제대로 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아이 있는 가족들이 그렇게 하죠. 노르웨이에서는 상류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의 상부까지 대부분이 별장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문제는 그 이하는 별장이 없는 사람들이 많죠. 별장이 있으면 본인도 비교적 자연과 함께 지내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대안책 중 하나가 콜로니하게예요. 별장이 있어야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생각을 많이들 갖고 있는데, 없으면 대신 콜로니하게에서 아이를 키우는 거구요. 완전히 자연하고 담을 쌓고 지내고는 잘 클 수가 없는 그런 생각이지요. 제가 본 교육학적으로도 맞고요. 노르웨이는 도시화가 된지 얼마 안된 사회예요. 도시화가 본격화된 것도 전쟁 후이고요. 상당수의 노르웨이 윗세대 사람들이 시골출신이거나 시골출신의 자녀들이예요. 그러니까 그들한테도 어찌보면 이게 자연스럽지요. 뭔가 그렇게 자연과 함께 지낸다거나 그러는게 자연스럽지요.

김보혜 : 콜로니하게는 오래 전부터 이어온 도시농업의 형태이나 제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곳은 공동으로 경작하는 곳이예요. 이런 형태의 도시농업은 10년쯤 전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박노자 : 제가 아쉽게도 거기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좋은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콜로니하게는 오슬로보다 스톡홀름이나 코펜하겐이 훨씬 더 발전되어있어요. 아무래도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노르웨이사람들의 별장 보유는 덴마크나 스웨덴 사람보다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별장이 있으면 굳이 콜로니하게 안 해도 되니까.

콜로니하게 사진 (송콜로니하게, 참고 http://www.dosinong.net/2019/09/5.html)

김보혜 : 제가 선생님께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 중 하나는 노르웨이 매체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그런 이유로 도시농업과 관련한 이슈를 알기 힘들고 또 정부의 정책과 관련한 내용을 듣고 싶었습니다.

박노자 : 제가 노르웨이 신문을 계속 읽고는 있지만 콜로니하게의 언급은 크게 자주 나오진 않고요. 가끔 그것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너무 적게 한다고. 왜냐하면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스웨덴, 핀란드)에 비해서 노르웨이에서 훨씬 덜 하는 거고요. 휫떼보다 콜로니하게가 좀 더 좋은 형태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요. 왜냐하면 휫떼는 멀리 있어서 왔다갔다하려면 휘발류 낭비가 있고요. 콜로니하게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올 수가 있고요. 그러니까 콜로니하게가 적은 노르웨이가 상대적으론 후진적이라는 애길 자주 하지요. 독일은 이런 도시농업(클라인가르텐협회) 가입자들이 한 150만명이예요. 엄청 나지요. 제가 독일 도시 갈 때마다 그걸 보거든요. 그러니까 여기는 너무 안 하는거지요. 그러니까 자책적으로 언급을 많이 해요. 우리가 더 해야 한다.

휫떼hytte는 도시 속 정원이 아닌 도시외곽의 전원별장과 같은 것을 말한다. (편집자주)

김보혜 : 제가 이곳에 와서 알았지만 노르웨이의 농산물들이 대부분 수입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식량 확보의 자구책으로 도시농업이 이슈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요?

박노자 : 자립이 필요하다는 얘기 자주 나오는데, 그것도 다 기후 문제와 연관시키는 거지요. 왜냐하면 수입이라는 것이 어쨌든 휘발류 태운다는 얘기가 되는거고요. 바다로 운송을 하던 비행기로 운송을 하던 간에 휘발류 태우는 거니까 이건 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거고 되도록이면 단거리이동만 한 재료로 만든 음식, 그게 요즘은 강력한 요구이지요. short travel food 한국말로 그게 어떻게 되지요? 단거리재배?

김보혜 : 로컬푸드, 지역먹거리

박노자 :  이건 굉장히 강력한 요구예요. 그러니까 멀리에서 생산이 되고 휘발류 태워서 운반되는 것을 먹으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그런 얘기는 자주 나오지요. 근데 콜로니하게는 전체적으로 언급 빈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은데, 보통 노르웨이 자국에 대해서는 자책적으로 자주 이야기 해요. 너무 안되고 있다. 대책이 없다. 환경본위의 사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

김보혜 : 사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자기 집에 사과나무 한 그루씩 기르고 있는 이곳의 사람들은 포괄적으로 도시농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박노자 : 그렇게 생각하면 저의 집 앞에서도 텃밭이 있지요. 당연히 따뜻할 때 아이들이 거기서 뛰어 놀고 그러지요. 당연하지요. 오슬로에서는 80프로는 아파트 아닌 단독주택에 사니까 단독주택마다 조금씩 텃밭이 있지요. 그건 그렇지만 만약에 굳이 비교하자면 노르웨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스톡홀름이나 코펜하겐에 비해서는 반환경이다라는 지적을 받을 만 해요. 일단 비행기 너무 자주 타고, 차를 너무 자주 타고, 그리고는 외국에서 만들어지고 수입된 너무 많은 것을 입고 먹고 쓰고, 대체 에너지 사용 비율이 너무 낮고, 근데 여기에는 수력발전소니까 괜찮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그게 여러 직장에서는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되기도 해요. 저희 학교도 그렇고. 저한테도 그게 쉽지않은 문제예요. 왜냐하면 저는 한국 가는 출장이 많아서 대체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횡단열차를 타고 가는 것도… 

김보혜 : 가능하지가 않지요?

박노자 : 가능은 해요. 가능은 한데, 시간적으로 북조선 통과…. 블라디보스톡에서 배 타고 속초로 가든가 기술적으론 가능한데 한 10일 정도 걸려서…. 그것 때문에 강력하게 압박하기 시작했었어요. 비행기 타는 일수를 줄이라고. 근데 저는 사실 제 동료 중에서 가장 높아요. 자주 한국 다니니까. 제가 일단 서약을 어디까지 했냐 하면요. 노르웨이 남부와 스웨덴 갈 때는 열차만 타겠다. 뭐 거기까지는 가능한데 그 이상은 너무 힘들어요.


이어서, 한국사회이야기와 도시농업운동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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