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5일 금요일

[특강후기] 돼지, 포크pork 와 피그pig 사이 ("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감독 특강)

외식을 하면 고기를 먹을지 말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샤브샤브를 먹을지, 돈가스를 먹을지, 설렁탕을 먹을지, 탕수육을 먹을지를 고민할 뿐이다.

도시농부학교에서 좋은 먹거리를 이야기하고 그 실천으로 텃밭에서 채소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교육한다. 흙은 어쩌구, 농약은 어쩌구, 퇴비가 어떻고, 미생물이 어떻고... 많은 도시농부들이 흙을 살리고 해가 없는 건강한 상추, 고추, 토마토를 기르는 법을 배워간다.

이 맛있고 건강한 게다가 토종씨앗으로 키운 상추가 수확하면 어김없이 삼겹살 파티가 여기저기에서 열린다. 화학비료 안쓰고 건강하게 환경에 부담없이 키운 멋진 상추는 어느덧 삽겹살의 부재료가 되어버린다.

텃밭에서 공동체모임을 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시간이 바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시간이다. 텃밭에서는 역시 막걸리가 제격이다. 막걸리를 먹을 때는 안주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오이나 고추를 장에 찍어먹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대접받는 음식은 바베큐이다. 숯불에 직접 구워 야외에서 먹는 바베큐가 최상품이고, 간단히 먹는 라면이 가장 낮은 등급이다. 부침개와 샐러드, 비빔국수 정도도 텃밭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지만 고기가 나타나면 모든 음식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올라선다.

우리 공동체텃밭에서는 한 때 닭을 키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여우재텃밭, 서창텃밭, 도림텃밭에서 모두 닭을 키워봤었다. 달걀도 얻을 수 있고, 아이들에게 볼거리 놀거리를 함께 제공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닭똥을 퇴비로 이용하기도 하고 풀이나 굼벵이를 닭먹이로 주면서 텃밭의 작은 순환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2~3년 지나 닭들의 돌봄에 대한 부담으로 정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닭을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닭장을 만들고 돌보던 이들은 사료값의 부담 돌봄의 부담이 있었고, 병아리부터 키워진 몇몇 수탉들은 먼저 닭고기가 되기도 하면서 일부 회원들은 닭을 잡아먹는 걸 불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중에서 우리가 맛보던 닭보다 약간 더 질긴 닭들이지만 결국 회원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닭을 키우는 실험은 2년 때론 3년만에 멈추었다. 언제고 책일질 수 있는 회원들이 있다면 나는 계속 시도되었으면 좋겠다. 키우는 닭과 먹는 닭은 따로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닭도 생명이라는 것, 가축으로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되는데 이것 또한 경험으로 느끼길 바란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감독은 비인간 동물에 대한 영화를 주로 찍는 작업을 하다가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살처분 당하던 때에 임순례 감독(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 리틀포레스트 감독)의 전화 한통을 받고 돼지에 대한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아이를 낳고 행복했던 삶에서 돼지로 인해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직접 돼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언제 돼지를 보았을까? 어릴적 기억을 되돌려보니 마을잔치 때 돼지 한마리를 마을에서 직접 잡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우리 시골에는 주로 소를 한 두마리씩 길렀지 돼지를 기른 집은 없었다. 어쨋든 그 돼지는 잔치를 위해 망치로 도살되고. 그 이후 나도 돼지를 본것은 트럭에 갇혀 끌려가던 모습이 전부였던 것 같다.




2008년 광우병파동과 2011년 구제역 파동에도 돼지고기는 여전히 우리 식탁의 가장 인기있는 고기이다. 쌀생산비용을 돼지고기가 앞지르기도 하고, 중국에 이어 돼지고기 일인당 소비량이 가장 높다. 삼겹살의 대중적인 인기는 먹방프로그램이 더욱 부추기고 있으며, 베란다 상자텃밭의 상추를 먹으려면 고기반찬이 곁들여져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돼지고기의 부위를 잘 알고 있는 우리도 돼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이미 멸종된 공룡보다 더 모르는 것 같다. 가축은 한자로 "家畜" 집안에 돼지가 함께 있는 모습과 밭을 검게(거름지게)한다는 뜻이라 한다. 이미 그 의미는 공장식 축산으로 퇴색되었고, 돼지는 다시 돼지를 낳는 역할(소톨stall에 갇혀 새끼낳는 기능)과 옥수수 콩 등를 투입해 동물성 단백질로 변환하는 기능을 한다. 그결과 폐기물이 발생하고 악취가 발생한다. 단백질에 손상이 될까 꼬리와 이빨은 제거되고 고기에서 냄새가 날까 수컷의 생식기도 제거의 대상이다. 

이런 방식의 고기생산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낳는다. 지구온난화, 과도한 물의 사용, 곡식의 사료화, 대규모 단작의 확대와 열대우림의 손실 등은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질병과 환경악화, 이상기후 등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동물복지 측면에 그치지 않는 문제들이다. 



값싼 돼지고기는 사실 이런 여러 사회적인 비용을 감추어버린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의한 손실비용은 사회가 함께 감당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정신적, 환경적인 피해까지 생각하면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는 결코 싼게 아닌 것이다. 공장식 축산은 효율을 이야기하지만 조금 만 생각하면 이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문득 몇 년 전 쿠바에 갔을 때 돼지와 닭들이 생각났다. 쿠바 시골마을 비냘레스는 국립공원으로 생태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2011년 쿠바 도시농업견학 때 들렸던 그 시골마을에서는 울타리도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돼지와 닭들이 우리 민박집 앞 모래언덕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속으로 "누구의 것일까?"를 먼저 떠올렸으나 얼마 후 어린시절 우리집 집안에 놓아 키워던 닭들이 생각났다.



쿠바 비냘레스 시골의 돼지와 닭들

영화 속에도 생태적인 농장의 돼지가족들이 나온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영화 '꼬마돼지 베이브'의 농장처럼 돼지가 키워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현실에서 보기 힘든 그 이미지와 광고에 만들어낸 이미지가 진짜 공장돼지들을 장벽으로 가리고 있다.

영화는 그저 채식주의가 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고기pork로 놓여지는 이것이 사실은 돼지pig라는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육식은 해야겠는데 돼지를 이렇게 키우는 것은 맞지 않는것 같다는 딜레마로 고민하게 만든다.

황윤 감독은 영화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의 변화와 가족의 변화를 겪게되고 이후 오랫동안 식물중심 먹거리체계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특강이 있었던 날 즈음 어느 청년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채식주의자인 자신이 군대에 가게되면 자신의 신념과 달리 단체급식으로 채식을 포기해야하기에

나는 10년전 잠깐 소, 돼지, 닭을 끊기도 했었고 지금도 일부러 고기를 사는 일은 거의 드물긴 하지만 텃밭에서, 도시농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깨우침과 실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텃밭에서 돼지를 키울까? 건강권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군대에 '채식'식단의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황윤 감독의 아들 도윤도 매일매일 학교급식을 대체하기 위해 도시락을 챙겨간다고 한다.

오랫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가축과 동물, 환경과 동물권,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하게 한 영화 그리고 특강이었다. 이제 무엇부터 해야할까?


[추가정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다운로드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3012
추천 영상 'The Game Changers' https://www.youtube.com/watch?v=iSpglxHTJVM
추천 영상 'What the health' https://www.youtube.com/watch?v=GN9-_kWTmrc
관련 책 '육식의 종말'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6618
지식채널e '돼지일까 고기일까' https://youtu.be/uvu0oZE-Vnw
지식채널e '배부른 돼지' https://youtu.be/PJxxqNuq8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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