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텃밭n지금] 겨울에 키우는 양파, 마늘

오창균(도시농업지원센터 지도교수요원, 좋은이웃농장 농장장)

 농장 주변에는 본업이 있으면서 부업으로 농사를 짓는 투잡(two-job)농부들이 있다. 농사규모도 수백평에서 천평이 넘기도 한다. 20년 넘게 두가지 일을 하는 농부도 있고, 이제 농사를 시작한 초보농부도 있다. 계절이 겨울로 바뀌면서 할 일은 많은데 해가 너무 짧아서 일 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주말은 물론이고, 새벽과 저녁에도 이마에 헤드랜턴을 달고 일을 할 정도로 투잡농부들은 항상 시간에 쫒긴다. 2년차에 들어선 농부가 배추를 비롯한 김장채소의 수확이 끝난 11월말에 양파를 심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의 밭에는 아직 다 심지 못한 양파모종이 남아 있었다. 내가 일러준대로 네모난 모종판이 아닌, 한쪽밭에 풀씨가 발아하지 못하도록 부직포(신문지 두세장을 겹쳐서도 가능)를 덮고 그 위에 상토를 3cm정도 깔아준 후에 양파씨를 넣고 모종을 잘 키웠다. 남은 모종을 심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방법이 없는것은 아니다. 양파모종을 터널모양으로 흰비닐을 덮어서 잎이 얼지 않도록 보온을 해주고 월동을 한다.



 
내년에 초봄을 알리는 입춘(立春)을 지나면서 얼었던 흙이 풀리면 양파모종을 옮겨심어도 제 때 수확이 가능하다. 다만, 제 때 심은것보다는 뿌리를 활착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크기는 조금 작을 수 있다. 늦게 심은만큼 모종을 보온한것처럼 옮겨심은 양파에도 비닐터널을 만들어주면 성장을 앞당길 수 있다. 4월중순경에 비닐을 걷어내고 물을 뿌리까지 내려갈 만큼 충분하게 공급해주면 생육에 도움이 된다. 흙이 풀리는 초봄까지 양파와 마늘은 뿌리만 활착시키고 월동을 하며 땅이 풀리면서 성장을 한다. 마늘의 싹이 올라오는 때부터 물을 충분하게 주는것이 마늘과 양파를 잘 되게 한다. 우수(雨水)절기를 지나면서도 비가 오지않고 봄가뭄이 지속되면 충분한 물주기와 흙이 마르지 않도록 수분유지를 해주는것이 중요하다.
 
그는 마늘은 제 때 심었지만, 주아(마늘씨앗)는 남았다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올해 수확한 마늘에서 채종한 씨앗으로도 심어보라고 권유를 했었는데 주아를 받아둔것이다. 올해 나의 마늘농사에도 주아를 많이 심었다. 마늘도 씨앗이 있는냐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마늘의 성장이 절정으로 달하는 5월경에 꽃대가 올라오면서 꽃이 피고 씨앗이 여문다. 음식으로 먹는 마늘쫑이 바로 그것이다.
 



마늘을 조금 더 크게 하려고 마늘쫑을 뽑거나 잘라내면 마늘꽃과 주아를 못 봤을 수도 있다. 맛있는 마늘쫑을 포기할 수도 없겠지만, 일부는 남겨서 씨앗을 받아 키워보기를 권해본다. 한 개의 주아에는 쌀알만한 씨앗이 10여개 들어 있다. 마늘을 수확하면서 주아도 함께 채종해서 마늘과 같은 방법으로 보관을 했다가 밭에 일정하게 골을 내서 뿌리는 줄뿌림이나 흩어뿌리고 흙을 덮는다. 주아는 손으로 비비면 씨앗이 낱개로 떨어진다.


 
주아를 심으면 첫해에는 토토리나 밤톨만한 한 개짜리 통마늘이 나온다. 통마늘을 다시 심으면 4~6쪽의 쪽마늘을 수확할 수 있다. 주아로 부터 시작하여 통마늘에서 쪽마늘 수확까지 3년이 걸리므로 전업농부들에게는 쉽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씨앗으로부터 만들어졌으니 1세대 씨마늘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해서 수확한 쪽마늘은 4~5년까지는 대물림해서 씨마늘로 사용할 수 있다.
 
주아로부터 씨마늘을 만들지 않고, 몇 세대인지도 모르는 쪽마늘을 씨마늘로 계속 사용하면 종자의 본능이 퇴화되어 작아지고 마늘이 가진 맛과 영양 저장성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주아로부터 길러낸 쪽마늘은 알이 굵고 단단하며 마늘 본래의 맛과 향이 다르다는 차이점을 느낄수가 있다.



 
추위에 강한 마늘이지만, 제 시기보다 한달여 늦게 파종하면 뿌리활착이 불량하므로 안하는 것이 맞지만, 보온을 해주면 뿌리를 활착하고 제 때에 수확이 가능하다. 방법은 마늘을 보온할 수 있는 볏짚,왕겨,톱밥도 있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낙엽이 좋다. 낙엽을 3~5cm정도로 흙위에 두껍게 덮어주고 흰비닐을 낙엽위에 밀착시켜 덮어준다. 흙이 풀리는 봄에 비닐만 걷어내고 낙엽은 그대로 둔다. 낙엽의 효과는 보온과 수분유지 뿐 만 아니라 풀씨의 발아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창끝처럼 뾰족한 마늘잎이 두꺼운 낙엽을 뚫고 사방에서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면 새생명이 싹을 틔우는 봄이 온 것이다.
 
 

[텃밭에서읽다] 시애틀의 공동체텃밭 운동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김충기


시애틀의 피-패치(P-patch)운동

시애틀은 미국에서 도시농업 커뮤니티가든(Community Garden, 도시텃밭)이 가장 발전한 도시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시애틀의 커뮤니티가든은 ‘피-패치(P-patch)’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시애틀 최초의 피-패치는 1973년에 만들어진 피카르도 팜 피-패치(Picardo Farm P-patch)다. 피-패치 일대에서 넓은 농장을 운영하던 피카르도 농장주가 농장 일부를 워싱턴대학 농업학과 학생들을 위한 실습장소로 제공한데서 시작됐다. 학생들이 실습을 마친 후에 수확한 농작물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하면서 시애틀 특유의 ‘공동체텃밭 운동(피-패치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시애틀의 도시농업은 피카르도 농장의 P와 자투리땅(patch)으로 대상지를 넓힌다는 의미로 피-패치(P-patch)가 됐다. 시애틀시의 마을 만들기 사업을 총괄하는 마을공동체국(Department of Neighborhood)이 1990년 신설됨에 따라 현재는 마을공동체국 피-패치 부서(P-patch Community Gardening Program)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16년 12월 기준 시애틀에는 피-패치가 88개가 있으며, 구획 3055개에서 시민 68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연간사용료는 10ft×10ft(약 9.3㎡)에 43$, 10ft×20ft 57$,  10ft×40ft - 85$fh로 규정되어 있다. 이 사용료는 토지에 대한 임대료로 피-패치의 대부분은 시유지나 공공시설의 유휴지에 위치하고 있어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시민들이 피-패치를 이용하려면 시애틀시의 피-패치 프로그램으로 신청해야한다. 2016년 12월 기준으로 대기자가 1,0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대기자들이 텃밭을 분양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텃밭별로 차이가 있지만 3개월에서 4년까지 걸린다. 이렇게 매년 신규차로 참여하는 비율이 25%정도이다. 시에서는 피-패치 참여자들에게 수도시설과 퇴비를 공급한다. 임대료가 부담되는 사람들에게는 재정지원이 가능하다.

피-패치 커뮤니티가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임대료외에 지켜야할 것이 또 있다. 연간 8시간 이상의 자원봉사를 의무적으로 해야하고, 자신에게 분양된 텃밭을 방치해서는 안되고 전체를 경작하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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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피카르도 피-패치 커뮤니티가든
피카르도농장에서 이어진 피-패치 운동은 시에서 지원하고 텃밭운영의 주체는 텃밭참여자들이다. 민관의 협력과 역할이 잘 나뉘어져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 공동체형성과 유지의 기능을 하고 있다.


커뮤니티가든(P-patch Community garden)의 조성과 운영

시애틀시청의 마을공동체국 자료에 따르면 피-패치 조성을 위한 단계별 흐름도를 제시하고 있다. 토지의 확보 여부 부터 조성 기금모금을 위한 안내와 연결, 프로젝트리더, 핵심리더그룹, 재무담당, 소통담당 등 공동체의 역할조직, 텃밭 디자인, 텃밭조성(Building)에 있어서 고용해서 할지 자원봉사활동으로 할지 등의 역할과 경작, 개장, 구획에서 배정까지의 전체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텃밭의 조성에 필요한 재원부터 운영에 들어가는 기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달한다. 일반적으로 마을공동체 매칭펀드(NeighborhoodMatching Fund)’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매칭할 수 있는 기금을 자체적으로 조성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텃밭참여자들은 바자회를 열어 공동텃밭에서 생산된 블루베리로 잼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양봉으로 생산한 꿀을 판매하는 등 자체기금을 마련하는데 힘을 쓰고 있다.

텃밭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것은 시애틀 마을공동체국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텃밭을 운영하는 주체는 텃밭에 참여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자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리더십을 세우고 지원하는 역할이 시가 하는 일이다.

텃밭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 공동체형성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리더십프로그램을 행정에서 지원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텃밭리더들은 시의 공무원과 함께 텃밭 전체를 총괄하는 리더역할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의사소통관리자, 토지모니터, 퇴비관리자, 창고관리자, 자원봉사시간보고자, 푸드뱅크관리자, 워크파티(Work Party) 리더 등 다양한 역할을 운영할 수 있도록 조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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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 브래드너 텃밭공원, 퇴비간이 중요한 공간에 조성되어 있고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부산물을 퇴비로 만들고 있다. 공원부지의 주택개발을 시민들의 힘으로 막고 대안적인 형태의 텃밭공원을 제안해서 조성된 브래드너 텃밭공원은 경관이 뛰어나고 여러가지 공원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시애틀 피-패치 88곳 중에 53개의 텃밭에는 기부텃밭(Giving Garden, Food Bank garden)을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텃밭의 여러 요소중에 사회적공헌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에서 수확되는 채소들은 모두 사회적취약계층에게 연결된다. 특히 푸드뱅크와 연계되어 정기적으로 기부가 되고 있으며 상추링크(Lettuce link)라는 프로그램을 단체에서 운영하기도 한다. 2016년 24,178파운드(약 11톤)의 채소가 이를 통해 기부되었다.

시애틀의 도시농업활동은 행정과 민간의 중간지원역할을 하는 전문단체들의 역할이 크다. 솔리드그라운드(Solid Ground), 그로우(Grow), 시애틀틸스(Seatle Tilth) 등과 파트너십을 이뤄 이 단체들의 피-패치 활동과 협력하고 있다. 피-패치 트러스트(P-patch Trust)는 1979년 설립되어 시애틀 피-패치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은 단체이름이 그로우(Grow)로 바뀌었다. 토지의확보와 공동체지원, 피-패치 포스트 신문발행, 활동지지, 기금마련을 통한 도구 구입지원, 리더십키우기 활동을 지원한다. 시애틀 틸스는 아이들과 성인들의 텃밭교육을 주로 한다. 솔리드 그라운드는 상추링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기부텃밭과 저소득층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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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 마라농장, 솔리드그라운드가 운영하는 기부텃밭은 상추링크프로그램으로 연결된다. 기업의 신입사원들이 신입연수프로그램으로 농장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공동체텃밭의 유지를 위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리더십이며, 이 리더십은 자원봉사 활성화에서 비롯한다.

시애틀의 가장 오래된 텃밭인 피카르도 피-패치의 어린이텃밭(Children Garden)의 매니저인 슈 올슨(Sue Olsen)씨는 “텃밭 참여자들은 1년에 8시간의 의무 자원봉사를 자율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나는 1년에 약 100시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남편을 도와 어린이텃밭을 운영하고 있고, 방문자들을 위한 안내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이사 할 때마다 흙을 가지고 간 인터베이 피-패치 또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리더인 제이 슈트(Jay Schutte)씨는 “인터베이 피-패치는 4개 구역으로 나눠 구역별 리더를 뽑는다. 여기에 양봉, 퇴비 등 분야별 리더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운영에 관련 논의를 함께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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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 인터베이 피-패치의 제이슈트, 다양한 재활용품을 이용해 텃밭곳곳을 아름답게 꾸민 것으로 유명한 인터베이 피-패치는 중앙의 광장과 멋진 창고, 그리고 텃밭사이사이 길들에 이름을 붙이고 금요일마다 저녁식사모임을 한다.

시애틀의 공동체텃밭은 시민들의 주도로 운영되면서도 공공성(열린공간,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공익적인 역할(녹지유지, 농작물기부)을 통해 공유지를 사용하는데 있어 정당성을 유지하려고하는 노력이 있다. 이를 위해 행정에서는 공동체텃밭에 필요한 여러가지 제반시스템(제도적인 틀과 텃밭조성과 운영의 메뉴얼)과 행정적지원(대기자관리, 기금연결)을 하고있다. 이를 통해 민관이 함께 유지하고 협력하면서 부족한 텃밭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국 지속가능한 형태의 텃밭 조성과 관리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없으면 도시텃밭의 확대는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다.

[시애틀시 웹사이트의 피-패치 커뮤니티가든 소개]
지난 44년간, 공동체 텃밭의 도시농부들은
  • 공동체를 성장시킨다
  • 시민참여 육성
  • 유기농 (원예) 실천
  • 생태환경에 대한 윤리의식을 높이고, 사람들의 삶에 자연을 연결
  • 지역적이고 유기적인, 그리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먹거리 접근성 향상
  • 환경개선과 마을 공동체의식을 되살린다
  • 자립심을 개발하고, 교육과 직접 경험으로 영양 개선
  • 어려운 이에게 음식 제공
  • 채소, 허브, 꽃 보존
  • 농사와 요리로 세대 간, 문화 간 이해를 높인다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텃밭에서 읽다] 고개를 들어 수평선을 보라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책세상

  한 여자가 자신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마진주’라는 이름의 여자는 자신의 방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한참을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낯설지 않은 곳이다. 여기가 어느 곳인지 어리둥절해 있는 참에 문이 벌컥 열린다. ‘빨리 안 일어나’하며 소리치는 사람은 바로 8년 전 돌아가신 엄마다. 요즘 필자가 즐겨보는 드라마 ‘고백부부’의 한 장면이다. 18년차 부부인 최반도, 마진주가 이혼 도장을 찍은 후 자고 일어났더니 두 사람 모두 과거 20살 시절 돌아가서 겪는 이야기이다. 반도, 진주 두 사람은 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갔으나 기억과 정서는 38살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으로서 먼저 살아본 경험과 이력으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필자도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후회했던 일들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나타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고 싶다. 대학 시절, 나는 평소 얼씬 거리지 않았던 종교 동아리에도 가보고, 졸업 후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도 수소문해 친구들과 함께 만나보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한 삶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줄 이들을 찾은 것이다.


 
  이 책,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의 주된 관심은 요즘 젊은이들의 불만을 해석할 수 있는 심리적 도구를 제시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대립한 오이디푸스의 반항하는 청춘이나 자신 속으로 빠져든 나르키소스의 자폐적인 고립을 선택한 청춘의 이미지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물리적 아버지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문화·경제 체제를 상징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심리학자”이며 심리분석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저자 레칼카티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사유에 기대어 ‘아버지와 아들’, ‘욕망과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분석학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나 작은 인내심만 가지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누구나에게 삶은 ‘타자’와 무관할 수 없다. ‘타자’의 인정과 평가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다른 인간 ‘타자’로부터 인정을 얻지 못하면 강아지, 고양이, 화초인 비인간 ‘타자’에게서라도 인정을 받고자 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하지만 끝도 모르는 경기침체, 빚더미와 함께 시작하는 사회생활, 비전과 직업의 부재는 청년들에게 욕망을 앗아갔다.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3년 반째 취준생인 한 청년은 사실은 취업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적 경제’쪽에 관심이 많지만 돈 문제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으로 청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비영리단체 ‘좀 놀아본 언니들’에 접수된 사연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고민을 깊이 털어놓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청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은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삶이 생동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전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본주의는 자유를 누리라며 부추긴다. 쾌락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만든다. 욕망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존재에 의해 ‘증언’될 때, 심리적 ‘고아’들이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시대 청년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텔레마코스이거나 텔레마코스가 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지인은 자신의 학생들이 텔레마코스 같다고 말한다. 강의 시간에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꼰대의 권위적인 설교가 아니라 삶의 파도를 몸으로 받아낸 인생선배의 ‘증언’에 목말라 있었을 게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텔레마코스의 시선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다. 눈이 멀어 바닥에 쓰러지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눈이 있어도 자신의 이미지밖에는 바라볼 줄 모르는 나르키소스와 달리, 텔레마코스는 바다를 바라본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운다. 누구라도 텔레마코스의 바다에서 돌아올 수 있다.” 저자는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를 심리 진단의 도구이자 이 시대의 청춘 또는 방황하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인문학 독서 및 강좌 열풍, 학습공동체, 도시농업공동체 등이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바다에 띄워진 배가 아닐까. 저자는 증인인 아버지는 ‘우연히’ 찾아 온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에게 그 ‘우연’이 찾아올 수 있도록 수많은 배가 띄워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