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5일 화요일

[노르웨이 도시텃밭이야기] 6 - 오슬로의 CSA 도시텃밭, 농민장터 그리고 텃밭요정


안녕하세요~ 모두 건강히 잘 지내시죠?
오늘은 연재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글이 될 듯합니다.

제가 도시농업을 시작한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어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육아강의를 수강했던 엄마들 몇몇이 모여 육아에 대한 부담을 나누고자 모임을 만들었고 20개월부터 6살의 아이들과 함께 할 활동으로 찾은 것이 텃밭농사였습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와 학교텃밭을 진행하고 있던 남편이 추천했고 김진선 사무국장님과 당시 도림텃밭에서 철학하는 꼬마농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농사를 실천하고 계셨던 한세란 선생님과의 간담회를 갖은 후, 도림텃밭에 4구좌를 분양 받아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2018 아이그대로 텃밭축제, 2015년 이후 꾸준히 아이들과 도림공동체텃밭에 참여하고 있다.

이후 이 모임은 한살림 조합원자주지역활동을 3년간 진행하며 텃밭을 중심으로 모임 구성원들과 이웃의 공동 성장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실천하였습니다. 물론 2017년 여름 노르웨이에 온 저는 그 이야기를 이곳에서 전해 들었지만, 개개인의 욕구에 충실하고 각자의 역량 안에서 실천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지금도 저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만들었던 이 모임은 아주 값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텃밭 안에 있으면 고요하게 요동치는 텃밭에 귀 기울이게 되고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을 집으로 들고 오는 길에는 누군가와 내 손에 들린 이 귀한 것들을 나눠먹고 싶다는 바램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저의 고민에 다시 한번 답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다양한 도시농업의 가치 중,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먹을 거리의 자립적 생산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잉여 생산물을 지역에 공급하고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인데,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소비가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극을 소통과 관계로 채우고 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선택 그리고 의식이 반영된 일종의 문화가 되는 소비가 텃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곳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맡할렌의 CSA 테이블

오슬로의 대표적인 푸드코드인 맡할렌(mathallen)에는 2주에 한 번, 건물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 위로 방금 땅에서 나온 듯 시커먼 흙을 잔뜩 무친 감자며 당근 그리고 파나 잎채소류들, 간혹 공급되는 육류와 유제품들이 진열됩니다. 이 생산물들은 오슬로시 근교의 지역사회지원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이하 CSA)로 운영되는 15개 농가에서 재배한 것들입니다. 3시반부터 예약이라는 푯말이 놓여있는 곳으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고 어디선가 키보다 높게 쌓인 농작물이 담긴 수레를 가져옵니다. 테이블을 깔개로 덮고 가져온 농산물들의 진열이 끝날 때면 협동조합(Kooperativet)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가방을 손에 든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 듭니다. 그들은 이미 계량되어 바구니에 담아놓은 야채와 한 움큼씩 모아놓은 파릇파릇 신선한 것들을 정성스레 자신의 가방에 담습니다. 테이블에서 안내를 하는 사람이나 채소를 담아가는 사람 모두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입니다. (kooperativet.no) 


제가 찾았던 날은 8종류의 야채가 공급되었고 66명의 회원들이 이용하였습니다. 소비자는 필요에 따라 매회 주문하고 농가에서는 주문의 수량에 맞춰 생산물을 배송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오슬로 시청 별관 사무실(Bykuben)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꾸러미와 아주 흡사한 모습이지요. 한국의 생활협동조합이나 몇몇 단체에서는 일년 혹은 몇 개월을 단위로 선수금을 받고 일주일 혹은 일정기간을 두고 제철에 생산되는 야채들과 그러한 야채로 가공된 식품들을 모아 소비자에서 배송해주고 있는데 바로 그러한 꾸러미가 이곳에도 있습니다.

오슬로시청 별관

이 꾸러미사업은 노르웨이 유기농(Økologisk Norge, okologisknorge.no) 시민단체에서 지원합니다. 지원의 규모는 최소한의 코디네이터와 같은 역할이고 사업 운영의 상당 부분은 회원들의 자원봉사활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이 단체는 노르웨이 전역에 위치한 84개의 CSA 회원 도시텃밭과 농가를 지원합니다. (andelslandbruk.no/kart)

노르웨이는 2006년 처음 웨버란드 안델스브르크 CSA 도시텃밭(Øverland Andelsbruk, overlandel.no)이 문을 열었습니다. 3000여 평의 규모로 시작한 이곳은 현재 약 15만평의 땅을 경작하는 규모로 성장하였고 년간 평균 200~3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텃밭을 관리하는 4명의 전문가들과 회원들은 그 해에 심을 작물의 종류와 규모를 정하고 개인이 분양 받는 땅 없이, 농토 전부를 공동경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갑작스레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커트 옵뒐(Kurt Oppdøl)씨를 만나 텃밭을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텃밭 한 켠에 있는 텃밭 게시판에는 올해 경작하고 있는 작물의 종류와 작물별 파종과 수확시기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그리고 한 주의 일과표와 밭 설계도가 그려진 도면이 걸려있었습니다.



텃밭에는 노르웨이 전통의 듀그나드(Dugnad) 방식(마을의 일을 공동으로 한다는 우리네 두레와 비슷한데, 지금도 겨울이 끝나는 시점에 유치원이나 아파트 청소를 듀그나드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로 운영하는 작은 허브정원이 있었고 크고 작은 세 동의 온실이 있었습니다. 한 온실에는 고추를 수확했다는 땅에 내년 초봄 먹을 시금치가 심겨있었고 차단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작년 가을에 지었다는 신식의 온실에는 배추모종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삼 년간 마늘 농사를 지은 땅에는 보리로 교체하여 경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큼 천장이 높게 지어진 창고 건물로 발길을 옮기더니 한국산 텃밭용 앉은뱅이 의자를 보여주더군요. 또 잡초가 무성한 곳은 불을 놓는다며 가스통이 달린 등에 지는 스토브까지, 한국과 유사한 농사기법들에 친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곳은 처음 CSA의 지원으로 문을 열었고 현재는 자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CSA1971년 일본에서 시작했습니다. 농약의 위험을 알리고 유기농업을 확산하기 위한 운동을 하였으며, 시작 당시 몇몇 주부들이 소비자로 결성되었다고 합니다. 생산방식의 전환뿐만 아니라 소비방식에 새로운 시도가 있었고, 소비자는 년간 소비할 농산물의 값을 농민에게 미리 지불하고 정기적인 농가 방문을 통해 농사를 체험함으로써 생산자와 공동 책임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CSA 국제연합, urgenci.net). 한국에도 1992 CSA가 처음 소개되었고, 로컬푸드 운동의 일환으로 몇몇 단체에서 꾸러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회원으로 있는 텃밭인 복센엔가 나르밀요(Voksenenga Nærmiljøhage) 또한 CSA회원 도시텃밭이며, 노르웨이에서 CSA는 유기농사를 하는 농가에 안정적인 생산과 도시농업의 민주적이고 자립적인 운영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복센엔가 나르밀요하게

지난 일요일 오슬로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오슬로대학 식물원(Botanisk Hage)에서 농민장터가 있었습니다. (bondensmarked.no) 이곳에서 사람들은 수공예 치즈나 살라미, 노르웨이 전통케익과 빵, 각종 쨈과 꿀 등을 사먹을 수 있습니다.

오슬로대학 식물원 농민장터
저는 이곳에서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갈색치즈(brunost)를 구매한 적이 있어요. 마트에서 사는 것과 달리 거친 표면이 보는 것 만으로도 그 내공을 느낄 수 있는데 맛 또한 풍미가 있었습니다. 당시 작을 것을 하나 골라 계산을 하려는데, 치즈를 파는 할아버지께서 본인은 덴마크사람이고 영어를 잘 모르니 옆에 있는 젊은이에게 하라고 하시더군요. 주름으로 깊게 골이 팬 얼굴과 이가 빠져 흉해 보일 만도 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마치 오래된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한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도 할아버지는 자신 직접 빚은 치즈 가지고 장터에 계시더군요. 추운 날이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장터에 나와 있었고 판매하는 사람들 또한 맛보기 음식을 내밀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장터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가 일어나는 장소임과 동시에 서로의 삶과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이 됩니다. 사는 사람이 물건값을 물으면 파는 사람은 가격과 함께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신의 노고를 풀어냅니다. 사는 사람은 물건과 함께 그의 일상을 장바구니에 담아가는 것이지요. 특히 텃밭을 통해 이웃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많이 갖는다면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복센텃밭 수확과 겨울나기 청소

이곳의 텃밭은 수확을 모두 마쳤습니다. 회원들은 밭에 모여 겨울나기 청소를 하고 거친 잎이 가득한 야채수프를 함께 먹었습니다. 또한 올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모임과 개인밭에는 하게니스(Hageniss)라는 텃밭요정을 증여하였습니다. 이 텃밭요정은 내년 일년간 훈장처럼 그들의 텃밭에 전시됩니다. 그리고 내일, 내년을 준비하는 회원 간담회와 만찬이 있습니다

하게니스 텃밭요정

저는 얼마 전 밭의 대표인 파닐라(Pernille)에게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 연재된 글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일부는 영어로 번역하여 그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파닐라는 한국에 복센엔가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기쁘다는 말을 보내왔습니다. 내년에도 저는 이곳에서 텃밭을 일구고 아이를 돌보고 간혹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 어떤 일이 있나 홈페이지를 살피고 하겠지요. 올 한해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복센텃밭 가는길

2019. 11. 2.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김보혜)


P.S. 마지막 편은 오슬로대학교 동양학부 교수로 계시는 박노자 선생님과의 인터뷰가 준비됩니다~
박노자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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