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균(도시농업지원센터 지도교수요원, 좋은이웃농장 농장장)
흙 살리는 농사로 돌아가야 한다
농사를 시작할 때 마다, 퇴비를 넣고 흙을 뒤집어 갈아엎는 경운(耕耘)농법이 일반적이다. 경운을 한 후에는 작물의 생육에 알맞는 폭과 높이의 이랑(두둑과 고랑을 합쳐서 부르는 것)을 만든다. 흙을 갈아엎고 이랑을 만드는 경운농법은 흙의 부피를 늘려서 공극(흙알갱이 사이의 빈공간)을 만들어주면 물과 산소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경운농법은 과거 농경사회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랑을 만들면 빗물에 의해 흙이 잠기는 것을 예방하기도 한다. 지표면 보다 높게 이랑을 만들면 낮은 고랑으로 물이 흘러가는 배수로가 되고, 높은 두둑은 물빠짐이 잘 되어 작물의 뿌리가 물에 잠기는 과습을 예방할 수 있다.
과거 전통농업에서는 경운으로 흙을 뒤집더라도 토양생태계를 크게 파괴하지 않았다. 쟁기를 끄는 소의 육중한 무게는 네 개의 발로 분산되고 내딛는 면적도 발바닥 크기다. 화학비료와 농약도 없었으니 흙속의 미생물과 흙위의 생태계도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농업에서는 경작규모가 커지고, 소 한두마리가 끌던 쟁기질은 말 수십마리가 달리는 마력(馬力)을 기준으로 하는 빠른 속도로 흙을 잘게 부수는 농기계가 등장했다. 또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토양과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농업이 되어버렸다.
육중한 무게의 트랙터는 빠르게 회전하는 여러개의 쇠날로 흙을 곱게 갈아버린다. 속도는 매우 빨라서 흙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생명체가 미처 피할 시간도 없다. 미생물집단의 항상성(일정하게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질)도 파괴한다. 또한, 흙을 누르는 무게는 소와 비교할것도 없이, 트랙터가 지나갈 때마다 흙바닥은 점차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뭉쳐진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트랙터작업은 흙속에 경반층(흙이 딱딱하게 뭉친것)을 만들게 되고, 겉흙의 표토층만 반복해서 갈아엎는 경운은 시간이 지날수록 표토층의 유실(침식)로 흙은 점차 황폐해진다. 경반층은 물빠짐이 불량하고, 생육장애를 일으키는 비독(비료성분의 축적으로 인한 작물의 생육장애 )을 일으킨다. 이러한 악순환은 흙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작물이 자연적으로 생육할 수 있는 조건을 막아버린다.
자연에 맡기는 농사 가능하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에 자연적인 농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방법으로자연에서 나오는 유기물만으로 순환하는 농업의 가능성을 믿고, 지속가능한 농사를 위한 여러 가지 농법과 실험을 하였다. 작은 텃밭에서부터 지금의 수천평 농장에서도 유기순환 농사를 기본으로 토양생태계를 유지하는 농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시작은 표토층이 드러나지 않도록 흙위에 낙엽을 덮거나 풀을 적절하게 키우는것이다. 유기물멀칭은 흙속의 공극을 유지하여 수분과 산소를 순환시키고 미생물의 증식과 활동을 돕는다. 낙엽,풀과 같은 유기물은 점차 분해되어 흙속의 돌아가고, 작물에게 양분과 물,산소를 순환시키고 미생물활동의 연결고리를 유지한다.
올해 농장의 배추는 흙을 갈지 않는 무경운과 무퇴비에 겉흙을 덮는 유기물을 멀칭한 밭에 심었고, 또 다른 배추밭은 흙을 갈고 이랑을 만들었지만 퇴비는 넣지 않았다. 이해가 안되는 농사일 수도 있지만, 유기물을 넣고 풀을 키우면서 흙의 지력(地力)만으로 키울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물론, 농사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결과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유기순환농업을 기본으로 하는 친환경농법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가치와 철학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이라 해도 실제로는 자연파괴가 전혀 없을수는 없다. 농사를 짓는 행위자체가 자연속에서 이뤄지는것이고, 목적으로 하는 작물의 관리와 수확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리적인 생태계파괴는 있을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