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8일 월요일

[텃밭에서 읽다] 인공지능이 가르쳐 주는 인간다운 삶의 모습

인공지능이 가르쳐 주는 인간다운 삶의 모습

<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책읽는 수요일

얼마전 바둑 최고수를 이긴 인공지능이 화제가 되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다. 너도 나도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졌고, 대중매체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호들갑을 떨었다. 일자리가 대거 사라진다며 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은 저자의 인공지능과 인간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이다. ‘뢰브너상’이라고 불리는 튜링 테스트에서 저자는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해야 했다. 이 대회는 컴퓨터과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앨런 튜링이 제안한 실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튜링 테스트는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이 대회는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일대일로 서로를 모른 채로 채팅한다. 참가자는 인공지능과 인간 ‘연합군’이다. 심사위원은 채팅만을 통해서 상대방이 인간인지 컴퓨터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저자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심사위원에게 자신을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집요하게 고민했다. 결국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답게 행동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답하게 되었다.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른 생명체와 인류를 구별하는 차이점을 생각하는 능력, 이성에서 찾았다. 사물을 분류,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라고 믿었다. 생물학과 컴퓨터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것은 오만한 판단임이 드러났다. 침팬지 무리는 전략적인 사고를 통해 이웃 집단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인공지능도 바둑 최고수를 이길 정도로 이성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인간은 이성과 신체를 모두 가진 잡종이다. 이성은 인간의 한 부분인데도 인간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교육은 이성만을 강조할 뿐, 신체에는 관심이 없다. 수학은 중요 과목이지만 춤은 특별활동의 하나일 뿐이다. 학생들은 춤에 더욱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컴퓨터는 놀라거나 호기심을 느낄 수 없다. 이성만으로 자연과 세상에 경탄하는 시를 지을 수는 없다.



 
감정과 정서는 의사 결정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신경과학자 바바 쉬브는 뇌졸중에 의해 정서를 담당하는 뇌 부위가 죽어버린 환자를 관찰했다. 환자에게 만년필과 지갑 중 하나를 마음대로 고르는 과제를 부여했다. 이 대수롭지 않은 결정을 그 환자는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만년필을 집었다가 내려놓고 지갑을 집었다. 다시 지갑을 내려놓고 만년필을 집었다. 사무실 밖으로 나간 환자는 전화를 걸어 내일 다시 지갑을 골라도 되는지 물었다.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최선의 객관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을 때 감정 없는 인간의 논리적 이성은 헤맬 뿐이다.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지 않은 감정은 인간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인간다움의 요소다.
 
인간의 대화는 맥락에 의존한다. 친구끼리 ‘죽을래?’라고 말하는 것과 제3자가 그처럼 말하는 것을 인공지능은 구별할 수 없다. 건축가 글렌 머커트는 표준화에 반대한다. 건축물이 들어설 자리를 면밀히 살핀다. 바람, 그림자, 배수, 주위 식물에 따라 건축물을 설계한다. ‘장소 적합성’을 철저히 실천한다. 인공지능은 실제 세계와는 무관한 ‘의식적 사고’, 즉 수학적 사고만을 할뿐이다.
 
“나는 장소 적합성이 일종의 마음 상태, 섬세하게 조율된 감각으로 세계에 다가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이유는 오늘이 다른 모든 날들과 비슷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이다.” (160쪽)
 
인간답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자연스럽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인간이 생산적이며 재미를 느끼고 만족스러워 하는 순간은 아무 생각없이 ‘몰입’할 때라고 한다. 몰입의 조건 중 하나는 즉각적인 피드백이다. 필자가 PC 통신의 초창기에 채팅에 열광했던 이유가 그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보니 기술적 진보가 인간다움을 구현하도록 도와주었던 시절이다. 실제 대화에서는 말 끼어들기가 다반사다. 인간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인공지능에겐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미묘한 상황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편지글의 서두와 끝맺음처럼 격식, 문화, 전통에 따른 예측가능한 문장들로는 인간임을 증명할 수 없다. 뢰브너상을 만든 심리학자 로버트 엡스타인은 연애편지를 주고받은 상대가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저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방법 중 하나는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게임과 다르게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시티처럼 목표 없는 게임도 있긴 하다.) 우리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비전과 스타일을 갖추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놔두는 것이다. 습관을 없애고,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과 으레 기대하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400쪽)
 
바둑은 인공지능이 모두 계산할 수 없는 거의 무한의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 최고수에게 이기기 힘든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예측은 빗나갔다. 컴퓨터가 낙엽수림과 인간의 나체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힘들다고 한다. 자연은 바둑보다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놀라운 세계이다. 인공지능은 바둑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듯이 이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알지 못한다. 평범해 보이는 주위 풍경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놀라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놀라움과 깨달음, 경탄이 가득한 삶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