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5일 수요일

[텃밭에서 읽다] 정원,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다

<세컨 네이처> 마이클 폴란 지음, 황소자리
2017.1.25. 구름너머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폴란은 대도시인 맨하튼에서 뉴잉글랜드 시골로 이사했다. 집 앞뜰과 뒷뜰에 정원을 가꾸며 여유롭고 낭만적인 자연을 만끽할 수 있기를 개대했다. ‘월든’의 저자 소로처럼 살고자 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서 자신의 생각이 순진했음을 깨닫는다. 정원을 가꾸기 전에 많은 것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 책은 저자가 7년 동안 정원을 관찰하고 겪어내고 책을 읽으며 성찰한 결과이다. 자연은 무엇이며, 도대체 인간은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다.
 


저자는 귀촌한 직후 잡초와 작물이 평화롭게 어울려 지내는 정원을 가꾸려 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맹렬히 자라는 잡초와 신출귀몰하며 작물을 먹어치우는 우드척과 공존하려던 노력은 금세 수포로 돌아갔다. 제초제와 살충제로 자연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로처럼 인간적 필요를 무조건적으로 포기하며 밭을 잡초와 곤충들에게 모두 내어 줄 수 없었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생산이 있는 밭을 만들어야 한다. 마이클 폴란은 우선 자연 그대로의 자연, ‘야생의 자연’이 무엇인지 따져 물었다. 장미의 본질, 잡초의 속성, 대평원 등을 검토했다. 장미는 오랫동안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량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다양한 색상과 긴 개화시기는 야생 장미가 가지지 못한 성질이다. 잡초는 밭이나 개간지, 도로변 등 인간이 교란한 장소에서 자라는 존재들이며, 미국 중서부 대평원은 태고적 신비를 가진 곳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오래전에 사냥을 위해 불태워 만들어진 곳이다. 모두 “우리의 문화를 자연에 적용”시킨 것이다.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나 숭배 혹은 보존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모두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행위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야생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일에도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입산 통제구역이 그 사례다. 이제 “자연을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따로 떼어낼 수”가 없다. 떼어 놓으면 자연은 죽는다. 인류가 모두 협력하지 않으면 북극의 빙하가 녹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는 관념에서 벗어날 것을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도시텃밭은 “제2의 자연이다.” 도시텃밭은 인간의 개입이 필수적인 곳이다. 3평 남짓의 텃밭에도 다양하고 많은 요소들이 얽혀 있다. 햇빛, 물, 토양, 흙 속을 누비는 지렁이를 비롯한 작은 동물들과 이들을 먹이 삼는 두더지, 작물과 양분을 교환하는 각종 균류와 세균, 땅위에서 활동하는 늑대거미와 잎벌레들, 작물에 기생하는 진딧물과 진딧물을 잡어먹는 풀잠자리, 꽃의 수분을 도와주는 벌과 등에들, 두꺼비와 달팽이, 각양각색 잡초들, 여기에 인간까지 가세해 매번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를 만든다. 밭과 작물은 인간의 농경문화가 만든 결과물이고, 그것에 적응한 자연은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자연은 때론 해충과 잡초의 모습으로 인간을 힘들게 한다. 그런 어려움은 텃밭을 ‘인간중심적’인 생산지에서 자연의 방식과 원리를 일깨우게 하는 학습의 장으로 바꾸어 생각하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마다 산과 들을 찾아 떠난다. 자연은 그들 삶으로부터 멀찍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은 먼 곳에만 있지 않다고 말한다. ‘야생’의 수준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에게 달려있다. 결국 자연은 정원이나 텃밭의 모습으로 늘 우리곁에 있다. 물론 그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