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6일 목요일

[텃밭에서읽다] 입춘, 우리의 설날

안철환(온순환협동조합 이사장)
 
이 글은 안철환선생님이 텃밭보급소에 절기에 대해 연재했던 2008년 글 중을 다시 퍼온 것입니다. 지금은 원문을 찾기 어려워 출처를 이렇게만 밝혀둡니다.
입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입춘이 되었지만 아직 날은 겨울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곧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죠. 그러나 농부는 입춘 날 봄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흙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봄을 느낄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봄은 흙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흙을 시멘트로 덮은 위에서 사는 사람이 어떻게 봄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럼 봄은 어떻게 올까요? 봄은 바로 냉이 뿌리를 타고 올라옵니다. 겨울 추위를 받아 웅크리고 있는 입춘의 냉이를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놈을 꼬챙이로 살 파보면 초라한 이파리와 다르게 길죽하게 잘 빠졌으면서 토실토실하게 살찐 냉이 뿌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걸 보고는 한 숨에 “이~야!!!” 감탄사가 절로 나지요. 대충 흙을 털어내고 입에 넣어보면 입안에 봄이 가득합니다. 그렇게 농부는 봄을 느낄 수 있답니다.

냉이 뿌리에는 단백질이 많이 담겨있답니다. 물론 비타민도 많지요. 겨울 잠에서 깨어난 곰이 제일 먼저 먹는 것이 바로 냉이랍니다. 입춘이라고는 하나 아직 추운 겨울인지라 먹을 게 냉이 말고는 없지요.

우리의 음력 설날은 입춘 근방에 있습니다. 입춘에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글자를 써서 대문에 붙이는 것을 보면 입춘도 음력 설날에 버금가는 설날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면 정월 1월은 우수(雨水)에 듭니다. 24절기는 입춘부터 시작하는데, 첫 시작 절기를 절, 그 다음 오는 절기를 중이라 하고 순서대로 절, 중, 절, 중으로 이어갑니다. 그러니까 입춘은 절, 우수는 중, 경칩은 절, 춘분은 중이 됩니다. 중이 들어가는 절기를 기준으로 음력 달도 정해지지요. 우수가 1월, 춘분이 2월, 곡우가 3월, 소만이 4월, 하지는 5월, 대서는 6월, 처서는 7월, 춘분은 8월, 상강은 9월, 소설은 10월, 동지는 11월, 대한이 12월 그러니까 섣달이 됩니다.

왜 우수를 정월로 삼고 입춘을 설날로 삼았을까요? 사실 제일 한 해의 기점이 되는 것은 동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지를 작은 설날이라 했습니다. 12지지(地支)로 볼 때는 자월(子月), 첫 시작 달로 삼았지요. 이는 양력입니다. 태양이 기준이니까요. 그럼 음력설은 동지를 지나 처음으로 오는 그믐날로 삼는 게 상식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음력설은 그보다 한 달이 넘게 더 지나서 옵니다. 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구는 동지 근방에 와서 공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으로 도는 지구는 동지 때 태양과 가장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지와 대한 사이가 제일 짧아 어떨 때는 한 달 안에 동지와 대한이 함께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동지 다음에 오는 중, 곧 대한을 동지 다음 달로 삼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대한 다음인 우수를 정월달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요. 동지가 있는 음력 11월 하순경에 대한이 낄 경우 12월을 없애고 바로 1월로 넘어가도록 했습니다. 동지에는 윤달을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 복잡해 이해가 잘 가질 않지요. 복잡한 계산은 뒤로 하고, 사실 입춘을 설날 기준으로 삼은 것은 농경 사회의 반영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설날은 농사를 시작하는 날이지요. 농사를 시작한다고 하면 파종을 떠올리겠지만 우리는 파종보다는 거름 준비, 종자 손질을 농사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본격적인 파종은 춘분을 기점으로 합니다. 그래서 춘분을 설날 기준으로 삼은 사회도 있습니다. 유대인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렇지요. 여하튼......

입춘이 되면 집안의 어른은 한 해 길흉을 보았습니다. 먼저 입춘이 음력 설날보다 빨리 오면 그해 봄은 춥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실제로 그런 해를 보았더니 다 맞았습니다. 작년 2007년도 설날이 입춘을 한참 지난 2월 18일날이었는데 봄이 춥고 꽃샘추위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입춘 일진을 봅니다. 60갑자로 입춘날이 어떤 일진인가 보는 것이죠. 올해 입춘 날은 갑술(甲戌)입니다. 입춘 일진에 갑, 을이 들면 대개 풍년 들고, 병, 정이면 큰 가뭄이 들고 무, 기 이면 밭 곡식이 손상되고, 경, 신이면 사람들이 안정되지 못하고 임, 계이면 큰 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자세하게 60갑자에 맞춰 각각 일진에 해당하는 그 해 길흉을 점쳤습니다.

길흉을 따져보는 다른 방법으로 보리 뿌리 살려보는 게 있습니다. 보리 뿌리가 세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보았습니다. 뿌리가 많으면 튼튼하다는 뜻이니 당연히 수량도 많겠지요. 뿌리가 적다는 것은 겨울 날씨가 순조롭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그해 날씨도 순조롭지 못하다고 예측한 것이겠지요.

입춘에 선 봄은 그야말로 살짝 맛보기만 보여주고 이내 꽃샘추위가 몰아닥칩니다. 아직 추위가 남았다 해서 여한(餘寒)이라 하는데 어떨 때는 소한, 대한 추위보다 더 할 때가 있습니다. 작년 2007년이 그랬지요. 꽃샘추위는 꽃피는 봄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말이지만 농사에서는 아주 요긴한 추위입니다. 입춘 지나 우수, 경칩이 되어 벌레가 봄이 온 줄 알고 알에서 깨어났는데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추위에 얼어 죽고 맙니다. 말하자면 생태청소꾼인 셈입니다. 이런 꽃샘추위가 없다면 그해 농사에 병해충이 많이 발생합니다. 가을 벌초할 때 가끔 발생하는 말벌 떼의 습격이 잦으면 겨울도 따뜻하고 꽃샘추위도 별 볼일 없었기 때문입니다.

입춘에 제일 중요한 농사일은 거름 뒤집기, 종자 손질하기, 보리, 밀 밟기입니다. 거름은 가을에 만들어 놓은 것을 한 번 뒤집어 주든가, 겨우내 모아 둔 똥오줌과 아궁이 재, 낙엽이나 마른 풀, 왕겨나 볏짚 등과 켜켜이 쌓아 새로 거름 더미를 만들어 둡니다. 겨우내 처마 밑에 걸어두었던 이삭을 꺼내 씨앗을 걸러내고 체와 키로 까불리고는 계란이 뜰 정도의 소금물에 담가 가라앉는 놈들을 선별해서 종자로 씁니다.

보리밟기를 하는 이유는 겨우내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느라 서릿발이 서서 흙이 떠버려 뿌리가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밀도 마찬가지고, 양파나 마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로 살짝 밟아주면 됩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를 보면 입춘 날씨에 따라 그해 농사 길흉을 점친 내용이 나옵니다. “입춘에 비가 내리면 오곡에 해를 끼치고, 입춘일이 청명하고 구름이 적으면 그 해에는 곡식이 잘 익으나, 입춘일이 흐리고 음습하면 그해는 벌레들이 벼와 콩을 해친다.”
입춘은 따뜻한 봄을 알리는 날이니 봄 같지 않게 비가 온다거나 음습하다면 농사에도 좋을 게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