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일
30대 싱글남 A씨는 요즘 부쩍 장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언론과 강좌를 통해 접한 유전자 조작식품 GMO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장을 볼 때마다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봐도 식품 정보 표시란에 GMO 성분이 포함됐다는 내용은 한 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국바이오안정성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1,082만톤의 GMO 농산물을 수입했다. 이는 전 세계 수입량 2위에 해당하는 양으로 사료용을 제외해도 매년 국민 1인당 33kg의 GMO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섭취한 셈이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70kg이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하루 적어도 한 끼 이상은 GMO 범벅의 음식을 먹는 셈이다. 그렇다면 A씨는 깐깐한 소비자의 눈으로 GMO를 모두 걸러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숨은 현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놀라지 마시라. 이제부터 언급되는 식품은 모두 GMO 성분이 포함됐거나 포함됐을 것으로 강력히 의심받는 품목들이다. 식용유, 액상과당, 두부, 된장, 고추장, 과자, 아이스크림, 빵, 소스, 팝콘, 음료수, 라면, 커피 시럽….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 거의 대부분에 GMO가 들어
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MO의 위험성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엔 프랑스의 연구진이 몬산토의 GM 옥수수 NK603에 대한 실험결과를 공개했다. 이 옥수수는 자사의 제초제 ‘라운드업’에 대한 내성을 가진 GMO 작물이다. 연구진은 이를 실험용 쥐에게 2년간 먹인 결과 그렇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종양 발생과 간, 신장 손상 유발이 크게 늘어났음을 확인했다.
이 문제의 종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GMO 옥수수는 전체 GMO 수입량의 89%인 962만톤에 달한다. 이 옥수수는 대부분 전분(녹말), 전분으로 만드는 감미료인 전분당(물엿, 올리고당 등)에 쓰인다. 소비자들이 자주 접하는 빵과 과자, 음료수, 유제품, 소스 등에 고스란히 GMO 옥수수가 원료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싱글남 A씨는 단 한 번도 식품 정보 표란에서 GMO 성분을 보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면제조항에 있다. 소비자가 먹는 식품에 GMO성분이 포함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분 표시다. 실제 유럽연합과 중국은 모든 GMO 식품에 대해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식품의약품안전처 GMO 표시 기준이 있지만 원료 함량 5순위 내에 GMO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을 경우, 가공식품에 외래유전자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 관련 성분 표시 의무는 사라진다.
문제는 단순히 식품 섭취에 그치지 않는다. 대량으로 수입된 GMO 농산물이 야금야금 우리 생태계에 침투하고 있다. 한겨레 지난 1월12일자 지면에 따르면 2013년 인천 등 국내 18곳에서 옥수수 및 면화 등 유전자 조작 작물이 발견됐다. 발견 장소는 축산농가 주변 9곳, 수입 운송로 6곳, 사료공장 3곳이었다. 이는 수입된 GMO 작물을 사료공장 또는 축산농가로 옮기는 과정에서 씨앗이 흘러나가 저절로 싹을 틔웠다는 얘기다.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GMO 종자와 잡초의 교배에 따른 슈퍼잡초의 출몰 등 생태계 교란 가능성이 높은데다 몬산토 등 거대자본의 종자 특허침해 소송의 단초가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정부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아 뜨악하기만 하다.
GMO의 본토 격인 미국에서조차(버몬트주) GMO 의무 표시제 시행을 앞두고 있고 농무부는 GMO-FREE 식품에 대한 정부 품질인증 및 표시제도를 개발했다. GMO의 공습을 완전히 막을 순 없다고 해도 최소한 소비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마련하자는 취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약처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GMO 표기 면제조항의 변경을 검토하고 있지만 식품업계의 반발 등과 맞물려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에서 GMO 식품을 먹지 않으려면 농경사회로 돌아가 모든 음식을 자급자족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30대 싱글남 A씨의 깐깐하지만 실속 없는 장보기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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