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텃밭에서 읽다] 고개를 들어 수평선을 보라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 책세상

  한 여자가 자신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마진주’라는 이름의 여자는 자신의 방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한참을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낯설지 않은 곳이다. 여기가 어느 곳인지 어리둥절해 있는 참에 문이 벌컥 열린다. ‘빨리 안 일어나’하며 소리치는 사람은 바로 8년 전 돌아가신 엄마다. 요즘 필자가 즐겨보는 드라마 ‘고백부부’의 한 장면이다. 18년차 부부인 최반도, 마진주가 이혼 도장을 찍은 후 자고 일어났더니 두 사람 모두 과거 20살 시절 돌아가서 겪는 이야기이다. 반도, 진주 두 사람은 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갔으나 기억과 정서는 38살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으로서 먼저 살아본 경험과 이력으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필자도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후회했던 일들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나타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고 싶다. 대학 시절, 나는 평소 얼씬 거리지 않았던 종교 동아리에도 가보고, 졸업 후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도 수소문해 친구들과 함께 만나보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한 삶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줄 이들을 찾은 것이다.


 
  이 책,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의 주된 관심은 요즘 젊은이들의 불만을 해석할 수 있는 심리적 도구를 제시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대립한 오이디푸스의 반항하는 청춘이나 자신 속으로 빠져든 나르키소스의 자폐적인 고립을 선택한 청춘의 이미지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물리적 아버지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문화·경제 체제를 상징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심리학자”이며 심리분석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저자 레칼카티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사유에 기대어 ‘아버지와 아들’, ‘욕망과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분석학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나 작은 인내심만 가지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누구나에게 삶은 ‘타자’와 무관할 수 없다. ‘타자’의 인정과 평가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다른 인간 ‘타자’로부터 인정을 얻지 못하면 강아지, 고양이, 화초인 비인간 ‘타자’에게서라도 인정을 받고자 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하지만 끝도 모르는 경기침체, 빚더미와 함께 시작하는 사회생활, 비전과 직업의 부재는 청년들에게 욕망을 앗아갔다.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3년 반째 취준생인 한 청년은 사실은 취업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적 경제’쪽에 관심이 많지만 돈 문제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으로 청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비영리단체 ‘좀 놀아본 언니들’에 접수된 사연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고민을 깊이 털어놓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청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은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삶이 생동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전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본주의는 자유를 누리라며 부추긴다. 쾌락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만든다. 욕망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존재에 의해 ‘증언’될 때, 심리적 ‘고아’들이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시대 청년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텔레마코스이거나 텔레마코스가 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지인은 자신의 학생들이 텔레마코스 같다고 말한다. 강의 시간에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꼰대의 권위적인 설교가 아니라 삶의 파도를 몸으로 받아낸 인생선배의 ‘증언’에 목말라 있었을 게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텔레마코스의 시선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다. 눈이 멀어 바닥에 쓰러지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눈이 있어도 자신의 이미지밖에는 바라볼 줄 모르는 나르키소스와 달리, 텔레마코스는 바다를 바라본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운다. 누구라도 텔레마코스의 바다에서 돌아올 수 있다.” 저자는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를 심리 진단의 도구이자 이 시대의 청춘 또는 방황하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인문학 독서 및 강좌 열풍, 학습공동체, 도시농업공동체 등이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바다에 띄워진 배가 아닐까. 저자는 증인인 아버지는 ‘우연히’ 찾아 온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에게 그 ‘우연’이 찾아올 수 있도록 수많은 배가 띄워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