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인터뷰]지속가능한 농업, 지속가능한 지구, 자연농에서 그 길을 찾다

-자연농 최성현 농부를 만나다-

진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어느 오후 홍천에 푸르른 논밭 속에서 최성현 농부님을 만났다. 논밭 주변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리하고, 논에는 해피힐(자연농의 시작을 연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만든 품종), 붉은메 등 5가지 종류의 벼들이, 밭에는 다양한 종류의 야채와 야생화, 야생초가 조화롭게 자라고 있었다. 자연농을 공부하는 지구학교를 진행하고 휴식의 공간으로 보이는 오두막에는 가짓수가 몇 개 되지 않는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자칫 허전해 보이는 공간들 속을 가득 채운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자연이었다. 자연을 듬뿍 느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연농으로 기르는 5종류의 벼


Q.철학 공부를 하시다가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만난 뒤 지금까지 자연농으로 살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자연농의 무엇이 인생을 바꾼 건가요?

우리는 인간이 확인 한 행성 중 유일하게 생명체가 사는 지구에 산다. 지구에는 크게 식물, 동물, 미생물이 산다. 인간은 동물 중 포유류로 숲과 숲이 길러주는 것들을 먹고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유한한 지구는 한 그루의 나무라 할 수 있다. 모든 동물들은 이 나무를 뜯어먹으면 산다. 그중 인간은 나무에 해가 될 만큼 과도하게 뜯어먹는 유일한 동물이다. 16000년 전에 시작된 농업은 숲을 없애고 과수원과 논, 밭을 만들었다. 이로 인한 생산량 증가는 인구증가로 이어져 더 많은 숲을 파괴시켰다. 그 결과 현재 지구면적의 1/3이 사막이 됐다. 농업의 역사는 파괴의 역사였다. 지금이라도 농업은 더 이상 숲을 해치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 그렇다고 수렵·채취하던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인구수가 많고, 지구를 파괴하는 농업도 지속할 수 없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사이에서 찾은 해답이 바로 자연농이다.


Q.도시농부들도 무비닐, 무화학비료, 무농약을 원칙으로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 다. 대신 자연농약을 쓰고, 유기농퇴비나 폐기물로 퇴비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경운으로 한 발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땅을 갈면 맨땅이 노출되어 비와 바람에 의해 흙이 유실되며 빗물은 하천을, 바람은 공기를 오염시킨다. 그리고 경운한 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딱딱해진다. 동시에 겉흙이 가진 거름이 유실되면서 끊임없이 외부에서 퇴비와 비료를 넣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퇴비 만들기같이 지역에서 자원 순환을 실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기 논밭 안에서의 에너지 자립이 필요하다. 병충해 문제도 자연농약의 세계를 넘어서서 벌레와 싸우거나 죽이는 방식이 아니라 생태계를 살리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맨땅이 보이지 않고 풀로 멀칭된 밭 

Q.무경운에 자연농약, 퇴비나 비료까지 투입하지 않으면 이에 대한 대책이 있나요?
 
자연농에서는 땅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간다. 병충해도 자연이 해결해주고, 비료도 자연이 준다. 여기서 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이 만든 거름이 화학비료라면 하늘이 만드는 거름이 풀이다. 지구의 풍요로움은 풀로부터 온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풀을 뽑지 않고 베어서 그 자리에 펴 놓는다. 풀은 흙을 덮어 물과 바람을 막아주고 썩어서 거름이 된다. 자기 논밭에서 나는 풀을 알뜰하게 받으면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아도 해마다 땅이 좋아진다. 풀을 벨 때는 한꺼번에 베지 않고 건너뛰어서 벤다. 미생물들에겐 그 공간이 하나의 세계이므로 그 세계를 최대한 해치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이처럼 생태계와 먹이사슬을 해치지 않으면 그곳에 사는 미생물과 동물들이 땅을 가는 역할을 해주고, 하나의 곤충이나 균이 대규모로 발생해서 큰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연농에는 해충 자체가 없다. 해충이니 익충이니 하는 것은 철저한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자연농에서는 벌레와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병충해가 생기면 잘 듣는 농약을 찾아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하거나 자연을 오래 관찰하는데서 답을 찾는 것이 좋다. 큰 틀에서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 생각한다. 자연과 싸우지 않는 길을 찾는다. 싸움은 이쪽도 피해를 입힌다.
 
Q.자연농은 초기에 오염된 땅이 살아날 때까지 생산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땅이 살아날 때까지 인내하며 살아야 하나요?
 
이는 자신의 처지와 철학에 따라 다르다. 철학적으로 자신의 삶을 지구중심, 자연중심으로 바꾸고 어떠한 고난이 와도 이 길을 가고,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살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인내할 수 있다. 3년 정도가 지나면 조금씩 좋아진다는 것이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입증됐기에 이를 신뢰하면서 기다릴 수 있다. 만약 첫 해부터 좋은 수확량을 바란다면 많은 양의 퇴비를 넣고 한 차례 깊이 갈고 시작하는 길도 있다.
 
Q.사람의 인위적인 개입은 아니지만 자연의 순환을 관찰하고 적용하는 개입, 사이짓기, 혼작, 등 자연농의 농사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숲밭을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의 농업은 숲밭이 되어야 한다. 숲의 복원이 미래의 희망이다.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농지에 숲을 복원해야 한다. 숲 안에 논밭, 과수원, 목장, 사육장이 결합된 형태이다. 여러 형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많은 양이 필요한 주곡이나 잡곡류, 고구마, 감자를 기르는 숲밭이다. 다른 하나는 식용 가능한 야생초와의 결합이다. 대부분의 야생초는 여러해살이 풀로 한번 심으면 반영구적이다. 의외로 수확기간도 길고 거름 없이도 잘 자란다. 할 일이 거의 없다. 야생의 숲과 거의 비슷한 세계다.
 


Q.현재 자연농이 갖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자연농은 아무래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큰 규모로 농사짓기가 힘들다. 이것이 자연농의 가장 큰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부부노동력으로 2~3000, 과수원까지 병행하면 5000평정도 가능하다. 현재 자연농의 역사는 50년 정도 됐다. 나는 2세대이고 3세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고 있다. 그 안에서 새로운 방식이 시도되고 도전하고 있으니 이후에는 더 많은 면적이 가능케 될 것이라 예상한다. 아직까지 자연농으로 전업농부가 되기 어렵다. 현재 홍천에 귀농한 분들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농사는 식구들이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정도이고 생활비는 다른 일을 통해 벌고 있다. 
Q.단번에 자연농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단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연농은 농법이 아닌 우리가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즉 삶의 방식의 문제이다. 이러한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연농을 논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다. 지구를 생각한다면 자연농 밖에 방법이 없다.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무더위와 미세먼지, 여러 자연재해를 떠올렸을 때 우리가 정말 제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Q.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이상향이 있으신가요?
 
동식물의 세계를 보고 있으면 그들은 매우 뛰어난 복지 속에 사는 것 같다. 인간을 뺀 모든 동식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음 편히 산다. 그들은 인간처럼 불안한 사회를 만들지 않는다. 크게는 한 나라 안에서 보편복지가 실현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작게는 몇 농가, 혹은 마을 규모에서라도 생존의 걱정이 없는 세계를 만들어가 보고 싶다.
 
Q.마지막으로 도시농부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자연농의 제1원칙은 무경운이다. 도시 안에 하고 있으니 생태계와 생명의 고리를 건강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스터디를 통해 전 지구에서 가장 이상적인 농업이 무엇인지 탐구하길 바란다. 도시농업은 소규모이기 때문에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자연농을 통해 자연과 싸우지 않고 기쁨을 얻는 체험을 해보길 권한다. 다른 단체에서도 많이 견학을 오지만 경운이 주는 이로움을 포기하기 어렵다. 현대농업의 기술은 작물을 훨씬 더 빨리 크게 키우기 때문에 이와 비교하다보면 자연농은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농도 철학적으로 농법으로도 정리된 책들(자연농법, 자연농 교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 등)이 많다. 이 책들은 무경운으로 논과 밭에 씨앗을 심는 법부터 수확까지 세밀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관심만 있으면 책을 통해서도 적용이 가능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두 세 시간을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자그마한 텃밭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구를 위해, 인간을 위해, 나를 위해 이제는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이 아닌 짚 한오라기의 혁명, 자연으로의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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