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6일 수요일

[텃밭에서 읽다] 근현대사의 뿌리를 드러내는 호미 같은 역사 이야기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 김민철 외 지음, 내일을 여는 책
2017.7.26. 구름너머
 
 만주에서 항일독립군과 중국 팔로군을 소탕하기 위해 일제는 간도특설부대라는 조선인 부대를 창설한다. 1939년 5월 간도특설부대 일부가 만주 안도현에서 항일부대를 수사하던 중 밭에서 일하던 여성을 총검으로 찌른 후 불 속에 던져 넣어 죽였다. 훗날 한국전쟁에서 한국군을 지휘한 백선엽 장군은 이 부대 출신이다. 몇년 전에는 이 사람에게 군이 역사상 최초로 원수 계급을 주려다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2015년 한국일보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가난하다"라는 말을 증명하는 설문조사를 내놓았다. 독립운동 자손의 75%가 월 200만원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간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친일파 후손의 3분의 1은 명문대를 나와 기업을 운영하며 부를 대물림한다. 이런 이해하기 힘들고도 '부끄러운' 근현대사의 장면들이 바로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에 큰 논란이 있었다. 역사를 획일적 시각에 가두려는 의도다. ‘자학사관’을 지양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부각시키자는 특정 집단의 시각을 반영하려 했다. 학계와 시민사회를 비롯한 각계각층은 격렬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 했지만 지난 겨울 '광장의 힘'이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역사는 “과거를 돌아보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쓰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사건들도 드러내고 기억해야 한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잘 쓰인 학생용 역사 교과서들이 많지만 여러 공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구석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긴 시간을 모두 담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는 중요하지만 비어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들을 청소년들에게 알려 주려는 취지로 편찬되었다. 친일파, 해방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박정희 정권이라는 4부분으로 나뉘었는데, 각각 그 분야를 깊이 고민한 저자들이 참여했다.


 
 책은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말그대로 격동의 시기였다.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복잡한 역사적 사실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었지만 상세한 사실들은 알 수가 없었다. 교과서엔 간략히 다ㄹ거나 생략한다.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 그 시대를 생생히 재현하며 교과서 구실을 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는 제주 4.3사건을 그렸고, 소설 <태백산맥>에는 10만여명이 사망한 국민방위군 사건이 담겼다. 역사는 “오늘의 삶을 진단하고 미래를” 그리는 데 꼭 필요한 인간의 성찰 방법이다. 그런 역사에서 진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된다면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역사는 우리 사회의 구조, 가치관, 정체성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베트남 전쟁 참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를 병영국가로 만들어 장악한 박정희의 그림자가 아직도 버티고 있다. 병영국가라는 프레임으로 국민과 사회를 바라보는 지배계층에겐 스마트폰 메신저 감청이나 언론 장악,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닌 지금 이곳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15세기 멕시코 계곡을 정복한 아즈텍인들은 그 이전 국가의 기록을 모두 없앴다. 1620년대 스페인인들도 그 지역을 점령하면서 아즈텍인들의 기록을 없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1984>의 작가, 조지오웰의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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