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5일 월요일

[텃밭에서 읽다] 유럽의 백인이 지구를 정복한 이유

[텃밭에서 읽다] 유럽의 백인이 지구를 정복한 이유
<총, 균, 쇠> 2005,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
 
출처 : 픽사베이

왜 유럽의 백인들이 남북아메리카를 비롯한 지구 위 대부분의 땅을 정복했는가? 왜 그밖의 사람들은 정복할 수 없었는가? 왜 어느 사회는 우주선을 만들고, 어느 사회는 돌도끼만을 만들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현대 세계의 불평등의 궁극적 원인을 밝히려 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들었던 게으른 민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것은 편견일 뿐이다. 머리 좋은 유럽인이어야만 발명가가 될 수 있다는 편견도 깨버린다.(근현대의 대다수의 발명은 유럽인들이 해냈다.) 이 책은 막연한 통념과 편견을 깨어 준다. 결론은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인종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집어 삼킬 수 있었던 것은 기술, 전염병, 중앙 집권적 정치조직, 그리고 문자 덕분이었다. 이것들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근복적인 원인 때문이다. 식량생산력, 조밀한 대규모의 인구, 야생 동식물의 가축화·작물화 가능 여부, 대륙의 지리적 환경이 그것이다. 저자는 원인들 하나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나는 저자의 결론에 대해 말하기 보다 이러한 생각거리에 대해 말하고 싶다.

첫 번째 생각거리
“대부분의 농경민은 수렵채집민들보다 잘 산다고 말하기 어렵다”(160쪽) 우리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지금의 우리가 아마존 정글 속에서 수렵채집민으로 사는 사람들 보다 잘 산다고 말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결국 변화하는 자연 및 문화적 환경에 맞춰 ‘진화’된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결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는 민족에게 다가가서 석기 대신 스마트폰을 쥐어 주는 것이 결코 정당한 짓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화’된 인류의 대부분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야 할 것인가? 수렵채집민들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수렵채집민들은 하루에 3시간만 일했다.
출처 : 픽사베이

 두 번째 생각거리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다”(349쪽) “기술은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발견된다”(353쪽) “사실 수많은 발명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이것저것 주물럭거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발했고, 수요 따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일단 어떤 물건이 발명되면 그때부터 발명자는 그것의 용도를 찾아내야 했다.” 이렇게 발명된 기술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합리적 판단이 내려져 그 사회에 수용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이점, 사회적 가치관, 기득권과의 충돌 등이 수용에 관여한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적정기술의 빠른 확산이 안 이루어지는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겠다. 과연 기술은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가? 나는 어떤 태도로 기술을 대해야 할까?
 
세 번째 생각거리.
대학시절, 친구는 모든 집단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효율적이고 좋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금방 반론했다. 재벌기업은 권위적인 조직체계를 가졌지만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 말에 친구는 주춤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나라 재벌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지금의 부를 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렇더라도 일사분란한 수직적 조직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러려면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체제의 조직보다는 피라밋 체제의 중앙 집권적 조직이 더 적합할 것이다. 적들이 밀려오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토론만 하다가는 죽기 십상일 것이다. 저자도 “갈등해결, 의사결정, 경제, 인구밀도 상승에 따른 공간 활용”(432쪽) 문제 등을 고려하면 대규모 사회가 결국 중앙집권화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한 사회는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이룰 수 없는 일을 성사시킨다. 하지만 중앙집권적이고 비평등한 사회에서 ‘도둑 정치’는 소수의 지배자들만 살찌운다. 개인의 능력 보다는 그 체제의 속성상 불평등한 관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출처 : 픽사베이
우리나라는 구제금융기 이후에 계층간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그들이 ‘무력을 독점’하고 ‘대중이 좋아하는’ 맛집과 연예인들을 제공하는 우리 사회는 ‘도둑 정치’의 지배방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나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 아닐까. 좀 더 영리한 ‘도둑 정치’가 있을 뿐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맛집과 연예인들로 힘겨운 일상을 이겨내거나 로또 당첨만을 기다려야 할까? 평등화된 중앙집권화 조직을 기다려야 할까? 그것은 가능한 걸까? '평등'과 '중앙집권화'라는 단어 사이엔 모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윤리, 도덕, 좋은 삶, 자유, 평등, 행복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무리사회, 부족사회, 추장사회, 국가사회로 ‘진화’한 인류사회는 결코 개개인이 인간답게 사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척이나 의식적인 일이다. 우리가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