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0일 월요일

도시, 텃밭을 생각하다

도시, 텃밭을 생각하다
김충기


예전에는 농지 없는 농민들의 처지를 이야기할 때 ‘바늘 하나 들어갈 만큼의 땅도 없다’는 표현을 썼다. 생명유지의 가장 기본인 먹거리생산을 위해 농사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그래서 농사지을 땅이 있고 없고가 빈부의 차이를 나타냈다. 지금은 어떨까? 농지가 먹는것을 만들어내는 가치보다 토지가격으로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니 도시에 있는 농지란 개발의 대상지이지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생산의 역할은 중요치 않게 여긴다.
그런데, 최근들어 도시에서 농사지을 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시농업의 분위기를 타고, 도시농업에 활용할 농지, 도시텃밭의 확보가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땅이 없다. 아니 없다고들 한다. 정말 없을까?
왜 우리나라에는 상자텃밭이 유행할까?
우리나라의 도시는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혀 있다. 이런 도시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미 누군가는 스티로폼박스에 화분에 벽돌로 쌓은 화단 위에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규격화된 화분에 적당한 배합토를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한 것을 상자텃밭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것이 우리나라 도시농업의 대표상징이 되었을 만큼 많은 곳에서 ‘상자텃밭’을 ‘나누어’주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나눠준 상자텃밭에서 채소가 얼마나 생산이 되고, 매년 텃밭으로 다시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텃밭이 만들어진(조성된) 건지, 흙과 화분만 매년 소비되고 있는 것인지 알 턱이 없다. 상자텃밭의 단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흙의 물과 거름관리도 쉽지않다.
이제 상자텃밭은 그만하자는 이야기도 여러 군데에서 나올 정도이다. 하지만, 여전히 올해도 상자텃밭은 점점 더 많이 보급되어 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인기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공원이든 주말농장이든 공간이 있어야 농사를 짓지
상자텃밭이 말해주고 있는 건,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그만큼 농사지을 공간이 넉넉치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비어있는 옥상을 활용한 옥상텃밭이 가장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LED를 활용한 식물공장도 이야기한다.
최근 도시공원법에 ‘도시농업시설’과 주제공원으로 ‘도시농업공원’이 추가가 되면서 공원에서 공식적으로 도시농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천편일률적인 공원의 모습에서 앞으로는 텃밭, 논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도시농업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도시농업과 관련된 조례들과 법에서는 주말농장(도시농업농장)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어있고, 실제 다양한 시, 구에서 자체적인 예산을 지원해 공공형주말농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한동안 사용하기 어려운 유휴부지를 활용해 텃밭으로 활용하는 경우, 공유지를 텃밭으로 조성한 경우 그리고 민간농지를 임대해서 운영하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 도시농업 육성법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공공용 텃밭이 많아지게 해야한다.
영국의 얼라트먼트, 독일의 클라인가르텐, 일본의 시민농원은 그에 비해 오래전부터 체계화되어 도시텃밭이 활용되고 있다. 도심내 텃밭을 조성할 수 있는 다양한 근거를 마련하고 텃밭을 확보하는데 제도적으로 잘 지원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도시농업 육성법’은 도시텃밭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도시농업이라는 행위를 지원하는 것이 막연하게 있을 뿐 정작 도시농업을 실천할 도시텃밭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제도적으로 갈 길이 멀다.
도시, 공동체, 텃밭
제도적인 지원이 없었던 지난 몇 년 간, 도시농업은 자발적인 운동으로 도시에 텃밭을 만들어오고 있다.
귀농운동본부의 경우 도시농업위원회를 만들고, 도시텃밭을 통해 도시농부들이 실천할 수 있는 텃밭을 운영해왔다. 군포, 안산, 고양, 남양주 등 서울인근에서 생태적으로 농사짓는 텃밭에서 많은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시흥의 연두농장은 자활농장으로 출발해 독립운영되기도 했고, 고양의 풍신난농부들은 부재지주들이 소유한 농지를 무상임대 받아 소비자-생산자 공동체를 꾸려 제법 많은 농장을 도시민들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도 2008년 첫 텃밭을 얻었다. 십정동 열우물에 얻은 200여평의 땅을 지인의 소개로 무상으로 임대하여 쓸 수 있었고, 텃밭회원을 모집해 함께 농사를 시작했다. 텃밭회원들은 매월 공동체모임과 교육을 통해 농사를 함께 배우며 시작했다. 2011년 이 땅을 못쓰게 되면서 인근 밭으로 옮기게 되었다. 지금의 여우재텃밭이다. 2010년 있었던 구월동 우물옆텃밭, 2012년 서구에서 한들텃밭이 잠깐 이용했던 텃밭이었고, 2012년 서창텃밭을 만들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살리고텃밭을 시작해 현재는 3곳의 공동체텃밭이 운영되고 있다.
텃밭은 누군가에게는 쉼의 공간이 되고, 귀농을 위한 준비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가족들이 매주 이용하는 여가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는 공간이고, 직접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건강을 위한 공간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텃밭공동체가 된다.
저마다 다양한 요구에 의해 텃밭농사를 시작하지만 함께 농사를 짓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텃밭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생산녹지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열린공간으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도시에 열린공간은 공원이나 광장 뿐이 아니다. 텃밭과 같이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주는 공간이 공동체 형성에 더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순환과 텃밭농사
도시텃밭은 순환을 만들어낸다. 쿠바의 도시농장은 생태도시를 만들었다. 석유에너지의 위기에서 비롯된 쿠바의 식량위기를 극복할때 유기농업을 도입하게 된다. 화학비료를 쓰지않고 지렁이분변토를 쓰게되면서 소똥(지렁이 먹이로 쓰임)을 자원으로 쓸 수 있게 되면서 흙과 지렁이, 작물, 사람으로 자연스레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순환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고, 도시농장은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는 가까운 채소도 만들어내어 지금은 도시에서 채소를 자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텃밭도 이런 유기순환적인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퇴비간, 오줌액비, 생태화장실이 도시텃밭에서는 낯선 장면이 아니다. 도시의 버려지는 자원들이 텃밭에 오면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올해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처음 시작한 ‘살리고텃밭’은 자연순환농법을 실천하자고 선언 했다. 여기에서 농사를 짓는 텃밭회원들도 모두 자연순환농법으로 시작했다. 회원들과 틀밭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주변의 풀과 음식물쓰레기 등을 활용해 흙을 살려 땅심으로 농사를 짓자는 취지이다. 밑거름도 하지 않는 살리고텃밭은 벌써부터 그 효과로 회원들의 텃밭은 잘 자라고 있다.
“도시농업”이란 말은 왠지 어렵다. “도시텃밭”은 친근하고 쉽다. 텃밭은 집 마당과 같은 가까운 공간에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가꾸던 공간이다. 시골에도 넓은 들이 있어도 집안에 텃밭에는 파, 상추 등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누구나 자기 먹거리를 길러오던 텃밭스타일은 새로운 것이 아닌 ‘오래된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