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5일 수요일

도시농부들의 호미와 씨앗

도시농부들의 호미와 씨앗 (월간환경 4월 기사)

김충기(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

흙 없이 자라는 채소를 먹을 것인가?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역시 안전성이다. 직접 먹을거리를 길러서 먹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것인데, 역설적으로 도시의 환경이 좋지 않다보니 도시에서 키운 채소가 과연 안전한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각종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 비가 오면 산성비에 대한 피해는 없을까? 옥상텃밭을 조성하면 공기가 좋지 않아 거기에서 키운 채소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도시의 환경이 청정지역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이렇게 되묻고 싶다.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를 직접 마시는 것이 해로울까? 그 환경에서 자란 채소를 먹는 것이 해로울까? 우리 스스로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거기에서 키운 채소가 좋기를 바랄 수는 없다.

결국, 채소가 안전하려면 우리 사는 환경이 안전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라는 환경을 바꾸는 것에 신경을 쓰지않고 채소의 안전성에 대해서만 생각을 한다. 안전한 채소를 먹기위해 도시를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러면, 깨끗하게 통제된 환경을 만들어서 채소를 재배하면 안될까? 몇 해 전부터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었던 L마트의 식물공장에서 생산한 상추를 떠올리게 된다. 매장에 식물공장을 설치하여 직접 클린룸에서 생산한 신선한 상추를 판매한다며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LED조명을 활용하여 실내에서도 재배가 가능하고, 양액으로 양분을 제공하여 오염된 토양, 공기에 대한 염려가 없다. 철저하게 무균상태로 생산되어 안정성이 확보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환경에서도 제어를 할 수 있어 남극 세종기지와 같은 곳에서도 채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중동과 같은 곳에 컨테이너형 식물공장도 수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더 나아가 식물공장빌딩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간다. 언뜻 보기에 기술의 발전으로 채소도 완전히 통제된 상태로 안전하게 생산할 수 있는 굉장한 대안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먹거리에 관심이 커지면서 가축사육 방식에 대한 우려섞인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인간이 소를 많이 먹기 위해 열대우림을 훼손하고 옥수수를 생산하는 문제, 사람이 먹을 옥수수를 소를 주면서 생기는 먹거리 양극화의 문제도 있지만, 역시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는 안전한(건강한) 먹거리인가 이다. 육식자체가 건강에 좋지 않느냐를 떠나 지금의 가축사육방식으로 생산된 먹거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많다.

흔히, 양식이냐 자연산이냐로 우리는 생선의 질을 따진다. 그리보면 지금의 육식은 모두 양식일 것이다. 그것도 극도로 이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장식축산시스템으로 키워지는 가장 질 나쁜 양식이다. 그 시스템의 핵심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많이 생산하느냐이다.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채소재배. 공장식 축산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는 대부분이 동의하면서, 식물공장(공장식 채소재배를 위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런데, 건물안에 갇아놓은 채소가 케이지에 갇힌 돼지와 뭐가 다를까? 통제와 시스템으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지금까지 농사와 먹거리를 병들게 했다. 무균실에서 자란 채소가 깨끗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병이 걸려 면역력이 약해지면 무균실에 들어가는데, 무균실서 자란 채소는 얼마나 건강할까? 인간은 병이 나면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는데, 양액으로만 키운 채소는 얼마나 튼튼할까?



통제 시스템이 아니라 순환 시스템을 통한 자연에 가까운 먹거리가 필요하다.

텃밭의 진정한 건강함은 흙의 생태계에서 판가름 난다. 나는 도시농업관련 강의를 하면서 강조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농업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태도, 그리고 도시텃밭에서 비롯되는 생태적인 삶의 전환이다. 생태적인 삶의 핵심은 순환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 또한 순환을 기본으로 한다. 모든 유기적인 순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흙이다.

생명활동은 순환의 연속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문제도 순환에서 비롯되어야 건강하다. 유기농은 화학비료를 쓰지않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순환의 원리로 농사를 지을 때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 순환의 중심에는 흙이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유기물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흙을 살리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부터 전통적인 우리 농사는 똥을 활용하여 토양을 관리하는데 익숙했다. 유기물의 순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질소이다. 공기 중에 많이 있는 질소는 작물이 이용할 수 없는 형태이다. 질산이나 암모니아와 같이 이온 형태가 되어야 작물이 사용할 수 있는데, 가장 필요한 원소이지만 얻기가 어렵다. 탄소 또한 중요한 원료이지만 활용할 수 있는 탄소는 많아 일부러 비료로 공급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똥은 매우 중요한 질소원이었다.

지금은 수세식변기로 물과 함께 버려지는 것이 똥이지만, 불과 3~40년 전만 해도 농사짓는 집의 뒷간은 모두 똥을 모아두었다가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집마다 소 한두마리에서 나오는 가축분은 두엄으로 잘 쌓아 두었다가 밭으로 가곤 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음식물쓰레기라는 개념이 없었다. 소나 돼지를 주거나 두엄밭으로 가면 쓰레기가 아니라 모두가 자원이었다.

질소는 중요한 비료이면서 미생물의 활동에 없어서는 안되는 원료이다. 똥, 음식물쓰레기가 자원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하는 발효(퇴비화)과정에서 탄소는 미생물의 먹이원이 되고 질소는 미생물의 구성원이 된다. 짚이나 마른풀, 낙엽, 톱밥 등은 탄소는 많지만 질소가 거의 없다. 그래서 미생물의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나 발효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질소가 필요하다. 가축분, 음식물쓰레기, 인분은 이런 질소질이 많은 퇴비의 원료가 된다.

도시텃밭의 생태적인 기능은 복잡 다양하지만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다. 거름의 자급. 이를 위한 질소의 순환이 쓰레기를 자원으로 돌리는 효과를 낸다. 가장 쉽게는 오줌을 버리지않고 액비로 쓰는 실천에서 물도 아끼고 거름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자가퇴비를 만들기위한 도시의 유기폐기물(낙엽, 음식물쓰레기 등)을 활용한 퇴비만들기와 가장 급진적으로는 생태뒷간(톱밥변기 등)을 활용한 똥의 활용까지 거름자급이 순환을 불러오고 흙을 살린다. 이런 텃밭의 방식은 다른 삶의 방식에서도 순환하는 태도로 바뀌게 만들어준다.

도시텃밭은 회색도시에서 푸른공간을 만들어내거나, 먹을거리를 생산하면서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는 효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먹거리로 인한 푸드마일리지의 절감 효과보다 흙을 살리고 자원을 순환시켜 에너지에서 자립하고 먹거리를 자급하는 효과가 더욱 근본적으로 도시의 환경을 살리는데 의미를 갖는다. 쿠바 도시텃밭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도시농업은 도시텃밭이라는 공간과 도시농부를 중심으로 생각하자

식물공장이 경제적인 타당성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 에너지를 고투입하는 에너지집약적인 시스템이라는 문제를 떠나,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떠나, 여기에는 흙과 농부가 없다.

식물공장(수직농장)에는 농부가 없다. 여기에서 자라는 채소와 농작물은 농사지은 것이 아니라 제조된 것이다. 농부는 농사의 주체이다. 종자에 대한 권리와 흙을 일구는 일, 스스로 생산을 계획하고 생명을 기르는 일을 하는 것이 농부의 일이다. 식물공장에는 노동자만 있을 것이다. 농부의 계획에 의한 농사가 아니라 통제된 시스템에서 단순한 작업을 하는 노동자만 있을 것이다. 식물공장에는 흙이 없다. 자연에서 모든 생명은 흙에서 잉태된다. 모든 생명이 지탱하고 서 있는 흙을 제외하고 생명을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자연이 제공하는 환경을 떠나 인간이 만든 인공비료에 인공빛 통제된 환경은 지금의 기후변화로 생기는 문제를 통제하여 해결하겠다고 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발상이다.

도시텃밭의 환경을 탓하며 안정성을 논하는 것보다. 도시의 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도시의 흙을 살리는 도시농부들이 많아지고, 도시텃밭이 많아지는 것이 도시의 생태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