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가 보내준 사진 속 아이가 민소매옷을 입고 있는걸 보고 한국은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구나 생각했어요. 여전히 더운 여름을 어떻게 나고 계세요? 부디 잘 이겨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두 번째 글에서 언급했던 시원한~ 물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 물줄기를 뭐라 하면 좋을까요.. 하천? 아니면 강? 노르웨이어 elv(엘브,강)이라고 하는 물줄기는 오슬로시 곳곳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물길에 관심을 갖고 글로 전하고 싶었던 계기도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는 철로 옆, 집 앞을 흐르는 물이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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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소(위)와 안내책자(아래) |
오슬로 중앙역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는 오슬로 시내 11개의 물줄기를 따라 여행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곳에서 안내책자를 찾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물줄기 중 오슬로의 가장 역사적이고 공원과 문화시설이 즐비한 Akerselva(아케르셀바)를 소개하겠습니다.
물줄기를 따라 변화한 산업과 도시 그리고 노동자
아케르셀바는 도심에서 25번 버스를 타고 30여 분쯤 떨어진 수원지 Maridalsvannet(마리달스반넷)에서 시작합니다. 간밤에 내린 폭우와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로 어둑어둑한 날, 저는 마리달스반넷으로 향했습니다. 드물게 조깅을 하거나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솔직히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숲 속 산책로를 혼자 걸으려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엷게 물안개 핀 고요한 호수는 신비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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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dalsvannet, 오슬로로 흐르는 아케르셀바의 수원지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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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30분거리 북쪽에서 시작한 아케르셀바, 그 시작에 기술박물관이 있다. (편집자주, 구글맵) |
호수 근처에는 Norsk Teknisk Museum(기술박물관)이 있습니다 인천어린이과학관과 경기도 의왕에 철도박물관을 합쳐놓은 것 같아요. 그리고 기술박물관이 있는 곳에서부터는 학교가 있고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숲 속 길을 내달려온 아케르셀바는 이곳에서 작은 호수를 이루고 고인 물은 오래된 댐을 만나 거칠게 떨어지고 몰아치며 도시로 흘러갑니다.
이 물줄기는 오슬로 경영사립대학 BI 캠퍼스가 있는 Nydalen(뉘달렌)에서 사람들의 쉼터와 어울어집니다. 그곳은 대학이 있는 곳이면서 단층 아파트들과 쇼핑몰 그리고 공공기관과 극장 등이 있는 신도심이예요. 그곳의 중심에 아케르셀바가 흐르고 세련되게 정돈된 곳곳에서 여름이면 사람들은 수영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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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dalen(뉘달렌) 시내를 흐르는 아케르셀바 (구글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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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beider Museet(노동박물관) 앞을 흐르는 아케르셀바 (구글맵) |
이제 아케르셀바는 Arbeider Museet(노동박물관) 앞을 지나 Grunerløkka(그륜로카)에 이릅니다. 도시의 형성은 산업 발달과 그 성장을 같이 하고 산업 발달의 표본이 되는 공장들은 물줄기를 따라 형성되기 마련이지요. 오슬로 역시 184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의 일환으로 염색공장을 비롯한 다양한 공장들이 오슬로시의 동쪽과 서쪽을 가르는 아케르셀바를 따라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공장지대는 가장 오래된 공장을 볼 수 있는 노동박물관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그륜로카라는 지역까지 이어집니다. 노동박물관에는 아케르셀바를 형상화한 모형이 있고 과거 150여년 간의 공장들과 노동자들의 역사가 테마별로 기록 전시되어 있어 한 눈에 이 곳의 변화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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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박물관 전경과 아케르셀바 모형도 |
작년 저는 아이와 노동박물관 어린이 행사에 참여했었어요. 그때 했던 활동 중에, 생쥐인형을 낚싯대에 걸어 강물에 담가보는 것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이곳의 생쥐들은 염색공장의 폐수로 인해 온통 빨강, 파랑으로 물들었다고 해요. 하지만 맑은 물이 흐르는 지금, 아케르셀바에 빠진 생쥐인형은 그저 물에 빠진 생쥐 꼴일지언정 색의 변화를 없었지요. 활동을 끝내고 아이는 의미있는 뱃지를 받았어요. 그리고 진짜 말이 끄는 옛날식 마차를 타고 물길을 따라 여행해보는 체험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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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박물관 전시물과 가이드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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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박물관 앞 경관과 아케르셀바 |
물길의 보존과 환경복원, 삶과 도시재생의 물길로
현재 아케르셀바 주변의 모든 공장은 문을 닫았고 오래된 공장건물들은 식당과 예술문화센터 그리고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오슬로의 가장 큰 음식몰 Mathallen(맡할렌)이 있고 매주 일요일 한 공장건물에서는 일요마켓이 열립니다. 그곳에선 개인소장품이나 작가들이 내놓은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이곳을 찾아가보니 사람들로 굉장히 분비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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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hallen(맡할렌) |
특히 흥미로운 점은 공장 건물이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강줄기 또한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물길을 따라 자연스레 형성된 우거진 숲들이 사람들의 삶의 공간 속에 함께 들어와 있다는 점입니다. 이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이를 재우러 나온 유모차를 끄는 아빠들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도시에 살지만 맑은 강물에 고무보트를 띄워 물살을 타고 수영을 하며 젖은 몸을 햇살 가득한 공원에 누워 데우는 모습, 보기만 해도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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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륜로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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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마켓 |
그리고 매년 9월 넷째주, 서울 중동 밤마실 같은 행사가 아케르셀바를 따라 펼쳐집니다. 작년 저도 이 행사에 가봤어요. 행사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저녁 8시부터 밤 11까지 있었습니다. 눈 앞이 깜깜한 숲길에는 물길을 따라 초가 놓여 있었고 드문드문 동네 합창단의 감미로운 노래와 아마추어 밴드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환경과 개발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도 있었고요. 진정으로 노르웨이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행사였어요. 올해도 이 행사는 9월 넷째주 목요일 밤에 있을 거라고 합니다. (Akerselva:Elvelangs i fakkellys, www.elvelangs.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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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르셀바 밤마실 포스터 |
아케르셀바 주변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들은 이 강을 지키고자 하는 오슬로 시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1800년 중반부터 1900년 초, 아케르셀바의 오염상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심각했습니다. 이후 아케르셀바 환경공원 프로젝트가 1987년 환경부장관에 의해 발의 되고 약 4년간 집중적인 회복작업을 거칩니다. 뿐만 아니라 강을 보존하기 위한 시민단체는 개발 제한과 강 생태계 보존을 위한 감시와 활동 그리고 옛 공장을 활성화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의 아케르셀바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참조 www.osloelveforum.org)
이제 아케르셀바는 바다와 만납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다시 흐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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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르셀바 복원운동 |
얼마 전 지친 감정으로 집 근처 송스반 호수에 오르던 날, 호수의 물빛이 하늘을 담아 하늘빛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잠시 거친 바위에 몸을 뉘여 선잠을 청하고 마음 청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연재를 계기로 홀로 물 길을 따라 걷고 사진을 찍으며 물과 함께 호흡했고 많은 순간 감동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우리네 삶 터가 자연과 유리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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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스반 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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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겔란조각공원, 송스반 호수에서 흐르는 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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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대학캠퍼스 길, 송스반 호수에서 흐르는 물 |
2019. 8. 30.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단법인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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