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전에 출품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자~ 이제 투표를 시작합니다. 투표 용지를 받아 가셔서 투표 해 주세요”
나가보니 이미 각 팀에서 출품한 음식에 대한 시식이 끝났고, 투표 용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팀이름을 확인하며 도장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속한 여우재 팀 아빠들의 막걸리로 발그레진 얼굴에는 기대감과 자신감이 넘친다. 본인들의 팀명이 ‘밭두렁’인걸 뒤늦게 알고는 “우리가 언제 밭두렁으로 바뀐거야?”하면서도 들뜬 함박 웃음이다.
투표결과가 발표되고 여우재팀이 1등을 하자,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듯한 함성과 웃음이 가을의 승학산 자락을 경쾌하게 들었다 놓는다.
보기 좋다.
옆에서 보는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기분 좋은 모습이다.
삽 한자루만 있으면 산도 옮길듯한 분위기다.
2등도 3등도 다른 참가한 팀들도 발표가 끝나자 잠깐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다시 웃고 떠들고 먹으면서 즐겁다. 화려한 음식들은 순식간에 동이 나고 영화 상영과 뒤풀이를 위한 정리가 시작되자 일사분란하다.
난 뒤늦게 맛보지 못한 음식들이 아쉽다. 나누지 못한 뒤풀이가 아쉽다.
다음엔 좀 더 꼼꼼하게 찾아다니면서 먹고, 끝까지 남아 즐기리라!!
이번 도시농부 한마당은 잔치 좀 치러 본 단체의 솜씨가 보인다.
손도 크고 일도 무서워하지 않는 종가집 맏며느리가 한번 놀아 보자고 벌인 일 같다.
그 한마당에 적극적인 회원들이 숨기기 어려운 수준 높은 요리 실력과 아이디어를 펼쳐 놓으니 순식간에 흥겨운 잔치마당이 만들어 진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지만 잔치는 순조로웠고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잠수함 같다.
조용히 떠 오르지만 드러난 웅장함에 놀라게 되고, 잔잔하지만 크게 움직이는 모습이 그렇다. 요리대회도, 그림전도 처음엔 참여자가 많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는데 날짜가 다가오자 주변에서 술렁술렁 출전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판에 대표님이 박노해의 시를 띄우면서 감성을 자극했고, 현장에선 DJ하심님이 흥을 돋우셨다.
만두를 빚는 분들의 단아하던 모습도 너무 재밌었고, 요리대회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그림 그리던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저녁 내내 실컷 웃었다.
박노해의 가을볕*에 나를 말리는 날씨와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는 날씨가 섞인 듯한 오묘한 가을날
소박한 듯 화려하고, 흐트러진 듯 질서있고, 평범한 듯 특별해서
그 또한 오묘한 한마당 잔치가 그 날 빚었던 만두속처럼 빚어져서 센터 앞마당에 담기고 있었다.
- 고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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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 - 박노해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기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 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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